리비아인 대부분과 서방국들이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을 환영하고 있는 가운데, 사하라사막 이남 일부 지역에서는 카다피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 보도했다.
NYT는 카다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일 3만명 정도가 우간다의 이슬람 사원에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우간다 지역 신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수도 캄팔라에서 사원을 운영하는 살림 압둘은 "카다피는 우간다를 사랑했다"며 "사원을 위해 20년 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카다피의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지 일간 데일리 모니터는 "카다피를 영웅으로 칭한 한 전직 대사가 '알라가 그를 축복할 것이며, 석유를 탐낸 서방세력은 벌을 받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고 보도했다. 수십 년간을 1인자로 군림해 오며 통치한 자국에서는 국민들이 냉동고에 임시 안치된 그의 시신을 구경하려 줄까지 설 정도로 비참한 신세인데 극과 극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언뜻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이런 현실은 카다피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카다피는 1990년대 석유 등 막대한 천연자원에서 나온 자금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서방 세력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아랍 국가를 멀리한 대신, 경제적 지원을 통해 아프리카를 유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카다피는 2007년 "리비아는 아프리카 국가"라고 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고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카다피를 '왕중의 왕'이라 불렀다.
이 같은 이유로 아프리카연합(AU)은 과도국가위원회(NTC)를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것을 꺼렸고 카다피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하는 것도 반대했다. 부르키나파소, 기니비사우 등은 공공연히 카다피의 망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샤드락 구토 남아공대 교수는 "카다피가 나이지리아나 남아공으로 도피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격으로 리비아가 서방 세력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보도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