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두 달 전 수도 트리폴리에서 쫓겨나 고향 시르테에 몸을 숨길 때 이미 예고된 종말이지만
마지막 모습은 끔찍하면서도 초라하다. 42년 동안 절대 권력을 구축한 채
반(反)서방 아랍민족주의와 기괴한 언행으로 국제 질서에 도전한 오만한 카
리스마가 덧없이 느껴질 정도다.
과대망상적 독재를 청산한 리비아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갈림길에 들
어섰다. 카다피 독재가 길고 괴기했던 만큼, 리비아의 앞길도 험난할 것이
다. 해방을 외치는 민중의 환호가 드높은 한 켠에서는 막대한 석유이권과
재건 수요를 차지하려는 외세의 각축이 벌써 치열하다. 리비아에 연고가 깊
은 우리도 정세 흐름을 잘 살펴 대처해야 할 것이다.
카다피의 종말은 알제리 튀니지 이집트 등을 휩쓴‘아랍의 봄’봉기가 이룩한 승리다. 카다피는 석유 수입을 토대로 사회주의적 국가건설과 복지 실적을 남겼으나 서방과의 대치와 고립으로 경제 피폐와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여기에 독재가 장기화하면서 같은 지역ㆍ부족 출신과 아들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 다른 지역과 부족의 반감과 분노가 쌓였다. 견고한 듯하던 세계 최장기 독재 정권이 민중 봉기에 무너진 근본이다.
그러나 내전 초기 카다피 군의 압도적 우세를 바꾼 것은 민중학살 방지를 명분 삼은 유엔 안보리의 군사개입 결의다. 그 배경은 아랍 민주화 열풍을 통제하려는 미국과 서유럽 및 보수 아랍국가들의 이해관계다. 영국 프랑스와 카타르 등은 진작부터 반란세력의 조직과 무장을 은밀히 지원했다. 이어 미국과 나토는 지속적 공중폭격으로 카다피 군을 괴멸시켰다. 카다피의 마지막 탈출을 프랑스 전투기가 저지한 것은 상징적이다. 반군에 군사고문까지 파견한 외세는 이라크의 후세인 생포와 재판, 처형에서 경험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카다피의 참혹한 죽음을 유도 또는 방치한 듯하다.
이런 외세의‘배후 주도’전략을 좇아, 리비아의 미래를 이끌 과도정부도
독자적 민주국가 건설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 시민사회 등 민주적
기반이 없고 부족과 지역으로 갈린 리비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이루려면 서방의 지도와 후원이 필수적이다. 서방은 북아프리카의
골칫거리를 제거하고 석유와 시장을 얻는 수확을 거뒀다. 리비아도 안팎의
환호와 축하에 들뜬 모습이지만, 이라크에서 보듯 진정한 독립과 민주와 복
지를 이루려면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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