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그는 죽었노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미 CBS뉴스와 인터뷰 도중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농담이다. 로마 시대의 정치인 겸 장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보낸 승전보에 썼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 보좌관이 건넨 블랙베리폰을 통해 카다피 사망 기사를 접한 뒤 클린턴이 꺼낸 첫 마디는 "와우"였다. 그가 18일 리비아를 전격 방문한 것이 카다피의 죽음과 관련 있느냐는 질문에 클린턴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고 이내 "확실히 관계가 있다"고 180도 다른 답변을 하면서 싱긋 웃었다.
카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자 서구의 지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히고 리비아 국민에게 축하를 보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때 카다피와 밀월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과연 카다피를 비난만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21일 서구권의 이중적 행태를 비난했다. 그는 미국, 영국 등이 카다피의 기행에 침묵하거나 협조했다고 주장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총리 시절 카다피를 국제사회로 복귀시키는 데 현저한 역할을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규방파티를 함께 즐기고 전세가 기울기 전까지 카다피를 지지한 그의 절친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렇게 카다피와 가깝게 지낸 결과 서구권 석유 기업은 리비아 내 석유탐사권을 따냈고 건설업체들은 카다피 가족을 위한 호텔과 쇼핑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 MI6, 독일 정보기관이 고문으로 악명 높은 리비아에 테러용의자를 넘기고 리비아 정보기관과 정보를 교환해온 사실도 카다피 축출 후 드러났다.
카다피 체포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국, 프랑스 등이 카다피가 유혈 진압에 사용한 무기를 수출했던 것도 아이러니다. 심지어 리비아 내전이 한창이던 7월 중국 국영 군수업체는 카다피에게 무기를 대량 판매하려 했다. 영국 정부는 앞서 2월 중순 영국산 진압 장비를 리비아에 판매하려다 문제가 되자 서둘러 무기수출 허가를 보류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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