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미제로 남았던 실종자를 찾은 순간인데 실종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기겁했어요."
서울 성북경찰서 실종수사전담팀 권풍열(56) 경위는 3월 실종자 A(46ㆍ여)씨를 찾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사연은 이랬다. A씨는 2001년 1월 갑자기 사라졌고, 남편은 2003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하지만 A씨의 흔적을 찾지 못해 미제로 남았다. 이를 권 경위가 지난해부터 1년여간 재수사한 끝에 병원 진료기록을 토대로 겨우 A씨를 찾았다.
찾고 보니 A씨는 알코올 중독에 상습적으로 때렸던 남편을 피해 10년 전 가출을 한 것이었다. 모르는 남성들이 자신의 집 앞으로 찾아온 것을 보고 남편이 보낸 사람들인줄 알고 그처럼 겁에 질렸던 것이다.
조사할수록 A씨의 사정은 딱했다. 가출 후 남편이 A씨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해 A씨 앞으로 상당한 부채가 있었고, 그럼에도 칼부림까지 하던 남편이 너무 무서워 이혼 절차도 밟지 못하고 있었다. 가출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이에 여덟살 딸도 뒀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이었다.
권 경위는 우선 카드사에 A씨의 전 남편이 카드를 부정으로 발급받았다는 것을 설명해 500여만원의 부채를 해결해줬고, 중간에서 법률 상담을 해줘 전 남편과의 합의이혼도 도왔다.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A씨가 "권 경위 덕분에 현재 남편과 동사무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며 주례를 부탁했다. 권 경위는 이달 초 A씨의 결혼식에 주례도 서고 '평화로운 기운이 집에 가득 차다'는 의미의 한자 화기집문(和氣集門)을 직접 붓글씨로 써 선물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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