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광ㆍ풍력 이용효율 되레 후퇴… 표류하는 '녹색성장'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2008년 8ㆍ15 기념사에서 새 국가전략으로 제시된 뒤 3년이 지났지만,' 녹색'은 사라지고 '성장'만 남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녹색성장의 핵심인 에너지분야의 경우 서로 가치가 다른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 추진하면서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지적에 직면했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문제의식마저 사라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다. 2030년까지 40조원을 투자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확대, 세계 5대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이미 원자력 확대 정책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표면적 수치만 놓고 보면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규모는 최근 몇 년간 급성장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전체 매출액은 2007년 1조2,537억원에서 지난해 8조1,282억원으로 6.5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수출액과 민간투자 역시 각각 7.3배, 5.1배 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신재생에너지 보급 수준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녹색성장위원회와 지경부의 자료를 보면 2008년에는 보급 목표치인 2.48%에 불과 0.05%포인트 부족한 2.43%를 달성했지만, 2009년과 2010년에는 목표치 미달률이 각각 0.30%, 0.44%로 더 커졌다. 폐기물 기반 전기생산량을 포함시키지 않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따지면 2009년 보급 수준은 겨우 1.6%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는 대규모 발전이 가능한 조력발전을 새 카드로 꺼냈지만, 방조제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을 지낸 A교수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단순히 에너지량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용효율(시설용량 대비 발전량)을 관리하고 생산주체에게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보다는 대규모 시설투자에만 혈세를 쏟아부었다는 얘기다.
지경부에 따르면 기술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태양광이나 풍력의 경우 녹색성장 정책이 본격화한 이후 오히려 이용효율이 낮아졌다. 태양광은 2005년 12.2%에서 2009년 7.3%까지 떨어졌고, 2007년 21.9%까지 개선됐던 풍력도 2009년엔 13.3%로 주저앉았다.
정부가 전체 사업비의 70%를 지원한다고 하자 각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격으로 발전단지를 조성했지만, 최근 예산 부족으로 지원이 줄면서 지방재정은 운영비 감당조차 버거운 상황이 됐다. 게다가 태양광발전의 경우 입지제한이 없고, 풍력단지 역시 대부분 산간지역에 조성되면서 환경파괴 논란까지 거세다. 이를 두고 홍창의 관동대 교수는 "무리한 정책 추진의 업보"라고 했다.
내년부터 정부가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중단하고 의무할당제(RPS)를 도입키로 한 데 대한 우려도 크다. 이시재 환경연합 공동대표는 "정부가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보조해주는 FIT 대신 대규모 발전사업자로 대상이 제한된 RPS가 시행할 경우 재생가능에너지 전기 판매가격이 불투명해져 민간투자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의 수출 산업화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한 태양광업체 대표는 "중국에서 모듈을 들여와 소규모 태양광발전소를 만든 뒤 정부지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나마 수출이 가능한 쪽은 몇몇 대기업 뿐"이라고 말했다.
A교수는 "애초부터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모두 확대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녹색철학의 부재"라며 "이런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원전 확대 정책의 양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원전 13기 추가건설 계획… 거꾸로 가는 정책
에너지 분야 녹색성장의 요체는 2023년까지 원전 13기를 추가로 건설해 전체 전력 중 원전의 비중을 현재의 34% 수준에서 59%까지 끌어올리는 것. 지난해 수립된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선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제외한 발전설비에 총 44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 중 원전 투자비용만 30조원이 넘는다.
이명박 정부가 원전 확대에 힘을 쏟는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화석연료의 500분의 1에도 못미치고, 비용 대비 효율에선 석탄ㆍ가스에 비해 2~3배 높기 때문이다. 원전의 안전성 논란에 대해서도 "원자로를 식힐 장치가 4중, 5중으로 돼 있는 명품 원전"(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원전 확대 정책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는 시대적 조류에도 역행한다는 비판이 높다. 당장 문제가 되는 건 길게는 수백만년의 반감기를 지나야 방사능이 소멸되는 핵폐기물. 작업복이나 장갑 등 중ㆍ저준위 폐기물은 방폐장을 지어 보관한다지만, 폐연료봉 같은 고준위 폐기물은 아직 처리 방법조차 없다. 환경연합 관계자는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가진 미국조차 폐연료봉 처리 시설을 후진국에 두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원전 자체의 안전성이다. 진도 8.0의 지진에도 견딘다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붕괴되면서 절대안전에 대한 신화가 깨졌지만, 우리 정부는 별다른 근거 없이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지금도 세계 최고수준인 원전 밀집도를 2024년에는 365㎾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외딴곳에 설치된 외국과 달리 국내 원전은 대도시를 끼고 촘촘히 세워져 있어 4곳의 원전단지 반경 30㎞ 이내 거주자만 370만명이 훨씬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지의 안전성이나 환경에 미칠 영향보다 거액의 지원금을 앞세운 채 주민의 동의 여부를 최우선 조건으로 삼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전이나 방폐장 터를 결정하려면 활성단층 조사부터 해야 한다"지만, 정부는 원전 유치를 신청한 강원 삼척, 경북 울진과 영덕 등 3곳을 대상으로 1년 넘게 실시한 입지 적정성 검토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가동이 중단된 전 세계 130개 원전의 평균 가동연한은 22년이지만, 현재 가동중인 437기 중 30년을 넘긴 원전이 156기나 된다. 각국이 원전 해체나 신규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감안해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어서다. 우리 정부도 설계수명이 다한 고리원전1호기의 가동연장을 결정한 바 있는데, 올해 국정감사에선 2030년까지 12기의 설계수명이 추가로 만료되는데도 구체적인 폐로 계획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고리1호기가 고장을 일으킨 뒤 안전성 논란과 함께 폐기 요구가 거세지만 정부는 귀를 닫고 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원전은 이미 하향산업이다. 전성기였던 1979년에는 1년간 233기가 신규 건설됐지만, 2008년엔 단 한 기도 건설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2009년 2기, 2010년 5기, 2011년 2기 등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반면 2008년 이후 가동이 중지된 원전은 11기였다.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일본은 물론 원전강국인 독일도 최근 원전 완전폐기 시점을 2022년으로 못박았다.
녹색성장위원회의 한 위원은 "원전이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심각한 핵폐기물이란 점에서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당장 원전을 폐기하진 못하는 만큼 에너지 정책의 초점을 수요관리에 두면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뒷걸음질 치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
신재생에너지든 뭐든 가장 중요한 건 에너지사용 자체를 줄이는 것.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게 바로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이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온실가스 감축이지만, 애초 취지가 무색하리만치 정책은 크게 후퇴했다.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대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정부도 처음엔 탄소세 도입, 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조세연구원은 "유럽국가들처럼 탄소세를 부과하되 소득세나 법인세 등을 감면하는 조정이 이뤄지면 연간 9조원의 세수확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녹색성장위원회도 "배출권거래제가 목표관리제에 비해 온실가스 감축비용이 60% 이상 적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산업계 반발에 따라 녹색 보다 성장논리가 우선하면서 정부 정책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간접규제 중 실효성이 가장 높다는 탄소세 도입은 지난해부터 정부 정책과제에서 아예 사라졌다.
녹색위가 탄소세 대신 검토해온 배출권거래제도 시행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2013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기업이 감축목표를 초과달성한 기업의 배출권을 사들이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매년 5조6,000억~14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해 철강ㆍ정유ㆍ전자 등의 수출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재계 반발에 따라 시행시기는 2015년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그나마 정부가 최근 실행방안을 내놓은 목표관리제는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내년에 총 830만톤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336개 기업에 할당량을 부과했지만, 불이행시 과태료는 달랑 최대 1,000만원에 불과하다. 미이행 기업 공개 여부도 불확실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수출경쟁력 운운하는 건 당연하지만 정부가 계속 끌려가는 건 정책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론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소비구조를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