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대 뇌물 혐의로 받고 있는 신재민(53)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이국철(49) SLS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수사팀은 영장을 기각한 법원 판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지만, 검찰의 성급한 영장청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이숙연 영장전담판사는 20일 새벽 "의심의 여지가 있으나 (두 사람이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으니) 추가수사로 실체적 진실이 더 규명될 필요가 있다"며 이 회장과 신 전 차관의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검찰 수사가 두 사람의 범죄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취지로 사실상 보강수사를 주문한 셈이다.
뜬 눈으로 밤을 샜던 수사팀은 영장 기각 소식에 허탈해하며 법원을 강하게 성토했다. 영장에 적시된 범죄사실 이외 부분을 추가 수사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기각 사유가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아무리 로또 영장이라지만…" 등 다소 격한 반응도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에 포함된 범죄사실만 갖고 발부 여부를 판단해야지, 포함되지 않은 부분을 수사하라며 기각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법 이론적으로 판단해도 법원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검찰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1억원과 직무 관련성에 대한 검찰 소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다만 현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난다면 직무 관련성이 더 쉽게 인정됐을 것이라고 제시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그러나 법원의 영장기각 취지가 신 전 차관이 현금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확인해야만 재청구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은 신용카드 전표 등 증거수집을 통해 신 전 차관이 SLS법인카드로 1억여원을 사용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이 회장이 현금으로 줬다는 부분은 영장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검찰로선 증거 확보가 어려운 현금거래 사실을 추가로 확인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셈이다.
검찰이 다소 성급하게 영장을 청구한 것이 영장기각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은 이달 9일 신 전 차관을 처음으로 소환한 후 불과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대가성 입증이 어려워 사법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던 터라 영장발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검찰 내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좀 더 시간을 갖고 영장 청구 시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고 강도 높은 보강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선 이 회장이 신 전 차관에게 10억여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만큼 1억원 이외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금품거래 사실을 추가로 찾아내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대가관계를 좀 더 명확히 설명해줄 증거자료 확보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추가수사를 통해 두 사람에 대한 혐의사실이 더 늘어날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올해 초 '함바비리'에 연루됐던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해 뇌물 1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추가로 7,000만원을 더 찾아내 결국 구속했다.
하지만 현금거래는 물증확보가 쉽지 않아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수사가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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