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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말레이시아 정부의 골칫덩이, 시사만화가 주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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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말레이시아 정부의 골칫덩이, 시사만화가 주나르

입력
2011.10.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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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의자 등받이 너머로 남자의 무기력한 표정이 엿보인다. 의자를 뒤로 돌려보면 그 정체는 여자의 머리다. 마녀 같은 여자는 멍청한 남자를 무릎에 앉히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한다. 남자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의 총리이고, 여자는 그의 부인 로스마 만수르다. 무능한 총리 뒤에서 실권을 쥐고 흔드는 총리 부인을 꼬집은 풍자 만화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속을 뒤집어 놓은 만화가는 줄키플리 안와르 울하크(49). ‘주나르’로 더 유명한 시사만화가다.

처음 만화를 그린 1973년부터 압수, 투옥, 출판 금지 등 가시밭 길을 걸어온 줄키플리의 개인사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말레이시아 언론의 단면이다. 연구소 기술자였던 그는 틈틈이 만화를 그리다 아예 만화가로 전업했다. 1998년 국가개혁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금된 줄키플리는 이후 본격적으로 정부 권력을 향해 펜을 빼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발간되는 모든 신문, 잡지, 책은 출판물법에 따라 정부에서 관리한다. 면허를 받아야만 출판물을 발행할 수 있고, 면허는 매년 갱신해야 한다. 정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면허 발급을 거부할 수 있고 사법부는 정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중 삼중으로 묶여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에서 라작 총리의 살인 스캔들을 그린 줄키플리의 만화에 철퇴가 내려진 것은 당연했다. 2006년 당시 부총리였던 라작은 최측근 정치고문인 압둘 라작 바긴다의 내연녀 살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에 시달렸다. 20대의 몽골 모델 출신인 이 여성과 라작의 성관계 의혹이 제기되고, 그의 경호대장이 군용 폭약으로 여성을 폭사시킨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됐지만, 라작이 혐의를 부인하고 담당 형사가 돌연 잠적하면서 석연찮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줄키플리 등 반정부 인사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2009년 카툰 스토어라는 잡지의 창간호에 총리가 몽골 모델의 살인을 지시하는 듯한 줄키플리의 만화가 실리자 경찰은 잡지를 몰수했다. 요주의 인물로 찍힌 줄키플리는 수위를 더 높였다. 2010년 9월 총리 부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조롱하는 만화책 ‘카툰-오-포비아’의 출간 기념 파티 1시간 전에 ‘폭동 선동’ 혐의로 체포됐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책은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출판 금지는 불법이며 법으로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성명서를 낸 뒤 소송을 제기했다.

적나라한 풍자 때문에 출판사를 찾기 어려워진 줄키플리는 인터넷으로 방향을 돌렸다. 말레이시아에는 아직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제재법이 없다. 그는 인터넷에서 부패한 집권세력, 나태한 공무원, 여자를 이기려는 마초, 착취당하는 서민 등 다양한 인물들을 풍자해 말레이시아는 물론 전 세계 독자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선사했다.

7월 줄키플리는 국제만화가권리협회(CRNI)가 주는 ‘용감한 시사풍자 만화상’을 받은 뒤 “사람들의 지지가 뽀빠이의 시금치처럼 힘이 된다”고 웃으며 소감을 밝혔다. 며칠 뒤 책 출간 여부를 두고 열린 공판에서 진 그는 즉각 항소하면서 “나를 멈추게 하고 싶으면 정부는 아예 검은 잉크 수입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불굴의 의지가 효과를 본 것일까. 나집 총리는 9월 검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출판법에 어긋날 경우 재판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한 법을 폐지해 규제를 완화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가장 큰 개혁이라고 떠벌렸지만 줄키플리는 “생색내기용”이며 “면허 없이는 출판을 금지하는 법부터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시사 코미디언 주오 리보는 억센 사투리로 사용해 영리하게 검열을 피해가는 스타일이지만, 줄키플리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이다.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도 사람이니 당연히 두렵다. 그러나 내 뒤에는 지지자들을 포함해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눈이 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주나르에게 잘해주란 말이야’”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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