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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소금 제철 맞은 신안 - 태양 바람 그리고 땀… 소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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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소금 제철 맞은 신안 - 태양 바람 그리고 땀… 소금이 온다

입력
2011.10.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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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응, 한 구르마만 더 하고 좀 쉬세."

같은 풍경도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건 다르다. 이곳 염전이 특히 그렇다. 하늘을 투명하게 반사하는 염수에 눈처럼 쌓인 소금 결정, 그리고 바다의 기억을 적재해둔 듯한 나무 창고. 서쪽으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리는 소금밭의 실루엣은 먹고 사는 일의 비린 번뇌가 절멸된 화폭이다. 하지만 거기에 밥줄을 댄 염부의 숨소리는 소금보다 짜다. 바다의 고통을 삽으로 치대면 하얀 가루가 된다. 열 배미, 스무 배미 쉬지 않는 넉가래질의 기합 속으로, 그렇게 소금이 온다.

천일염 생산은 이글거리는 땡볕의 계절이 제철일 듯하지만 소금 농사꾼들은 가을을 진짜 소금철로 친다. 바닷물이 증발하는 데 볕보다 바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름은 바람의 습도가 높아 소금 농사에 좋은 조건만은 아니다. 염판마다 우북하게 쌓인 소금을 보려면 그래서 요즘 길을 나서는 게 낫다. 해가 지나치게 짧지 않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이달 말까지, 서해와 남해 바닷물 속에 만개한 하얀 소금꽃을 볼 수 있다.

신안으로 갔다. 신안군은 국내 천일염 생산의 87%를 차지하는 전라남도에서도 소금 농사가 가장 성한 곳이다. 신안의 수백 개 섬 중에 염전 체험으로 인기 있는 곳은 증도다. 슬로시티로 지정돼 사철 관광객이 북적댄다. 울산에서 시작된 24번 국도가 서쪽으로 거의 끝나는 곳에서 연륙교로 연결돼 이제 육지 아닌 육지가 된 섬이다. 증도로 꺾어지는 길을 버리고 내처 국도의 끝까지 차를 달렸다. 파도에 길이 막힌 지도읍 점암 선착장. 거기서 농협에서 운영하는 철부선에 올라탔다.

20분 남짓 만에 배가 도착한 곳은 임자도라는 섬이다. 임자도 선착장에 내리면 알쏭달쏭한 간판과 맞닥뜨리게 된다. 점암 선착장에 분명 '국도 24호선의 시발점'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임자도 선착장에 똑 같은 표지판이 또 서 있다. 증도처럼 다리를 놓아달라는 섬 주민들의 강렬한 요구에 우선 도로 표지판부터 세우고 본 것이다.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이 민원이 이뤄지지 않은 덕에, 임자도의 염전에서는 조용히 옛 모습대로 소금꽃을 피우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니, 저건 저수지가 아니고 바닷물이랑께. 자네가 타고 온 배가 떠 있는 그 바닷물 말이여. 저기선 한 5도 되제. 그러다가 난치(1차 증발지), 누테(2차 증발지) 거쳐 여기까지 옴시롱 15도, 18도까지 높아져. 그라고 한 23~25도 되면 이렇게 퍼 담는 거제."

임자면 교동의 염전에서 만난 남성희씨는 웃통을 벗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지만 그의 몸에선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바퀴가 하나뿐인 수레에 두 포대(40㎏)가 넘는 소금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느라 땀을 훔칠 새가 없었다. 소금에 일자무식인 기자에게 설명까지 하느라 숨소리가 금세 거칠어졌다. "천일염이 좋다, 좋다 함서도 이게 식품으로 대접 받은 게 5년도 안 돼야. 그 전엔? 법적으론 광물이었제. 그러니 소금 농사 짓는 게 어땠겠어? 아이고, 말도 마…"

임자도엔 염판(한 뙈기의 염전) 두어 장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규모 염부들이 많다. 상당수는 이리저리 흘러 들어온 외지인들이다. 임자도는 파, 양파 농사로 적잖은 소득을 올리는 농촌이기 때문에 염전에서 일하는 토박이는 별로 없다고 한다. 멀리서 봤을 땐 그저 매력적인 소금밭의 원경을, 그렇게 소금버캐 앉은 인간의 얼굴들이 채우고 있다. 염부들은 고된 노동 끝에 소금의 결정이 맺히는 순간을 '소금이 온다'고 표현한다. 이곳 염전에 오면 그 말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다시 철부선에 차를 싣고 뭍으로 나왔다. 이번엔 증도로 갔다. 이곳엔 국내 단일염전 가운데 최대인 463만㎡(140만평) 규모의 태평 염전이 있다. 장화를 신고 염전에 들어가 소금을 채취하거나 재래식 수차를 돌리는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염(製鹽)의 역사와 천일염 관련 자료를 모아둔 소금박물관도 있어 어린 자녀와 함께하는 소금 여행엔 증도가 더 낫다. 함초 등 염생식물이 가득한 소금밭이 저녁 노을에 보랏빛으로 변하는 장관도 이곳에서 만끽할 수 있는 눈의 호사다.

서걱, 서걱, 서걱, 솩. 이 계절 염전에 가면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보자. 넉가래에 밀리는 젖은 소금 소리다. 빗자루에 쓸리는 낙엽이 미처 표현 못하는 가을의 깊은 파찰음이 이곳 소금밭에 있다.

■ 천일염

한국인이 조상 대대로 천일염을 만들어 먹은 것은 아니다. 전통 제염 방법은 전오염 또는 자염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갯벌이나 모랫바닥에 바닷물을 부어 적당히 말린 뒤 소금이 농축된 흙을 거둬 끓여서 소금을 얻었다. 천일염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왔다. 끓일 필요가 없어서 연료비가 들지 않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자염을 밀어냈다. 초창기 개흙에서 생鉞?천일염(토판염)은 불순물이 많고 쓴 맛이 났으나 염전 바닥을 타일이나 비닐로 깔면서 그 문제가 해결됐다. 염화나트륨 함량이 98% 이상인 인공염과 달리 천일염은 85% 정도다. 나머지는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성분이라 음식을 만들 때 감칠맛을 낸다.

임자도·증도(신안)=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1004개의 섬… 마른 땅보다 갯벌이 더 많은 신안

1,004개의 섬(유인도 72, 무인도 932)으로만 구성된 신안은 마른 땅보다 갯벌이 넓은 고장이다. 조금 쌀쌀하지만 썰물 때 그물을 쳐 밀물에 들어오는 고기를 잡는 개매기, 두 사람이 바다로 들어가 고기를 끌어당기는 후릿그물질, 개펄 위를 뛰어다니는 망둑어 잡기를 하기에 그리 늦은 철은 아니다.

임자도 도찬리 갯벌은 끝이 안 보이는 너른 개흙 너머 지주식 김 양식 시설이 설치돼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낙지와 갯지렁이가 많이 살고 있으며 퉁퉁마디,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간단한 그물 채비만으로도 농어, 조피볼락, 새우 등을 잡을 수 있다.

증도 증동 갯벌은 가까이 위치한 이국적 풍광의 우전리 해수욕장 덕에 찾는 이가 많은 곳이다. 갯발 상부엔 칠면초 등 염생식물 군락이 있고, 방조제 뒤에 염전이 조성돼 있어 바다의 다양한 면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해수욕장에서 쓸려나온 모래가 안쪽으로 들어와 갯벌 중앙에 모래톱을 이룬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증도에는 실내에서 갯벌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갯벌전시관도 있다. 지구의 형성 단계부터 갯벌의 탄생과 종류를 보여주는 공간, 갯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신안

●차를 이용할 경우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방향으로 가다가 함평 분기점에서 무안광주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북무안IC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이후 24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끝까지 가면 임자도행 철부선이 닿는 점암선착장이 나온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지도읍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하루 두 차례(오전 7시 30분, 오후 4시 20분) 있다. 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0여차례 운항한다.

●증도로 가려면 점암선착장 방향으로 가는 길에 사옥도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연륙교가 두 개 나오는데 첫째 다리를 건너면 사옥도,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면 증도다. 증도에 들어갈 땐 1인당 환경보존 비용 2,000원을 내야 한다.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돌아오면 1,000원을 환급해준다. 증도는 전 지역이 금연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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