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당국과 금융당국 간의 불협화음이 심상찮다. 퇴직연금 물량 집중에 이어 생명보험사의 이율 결정을 놓고 다시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당국 간 혼선에 업계는 곤혹스럽다는 반응이지만, 일부에선 금융감독원이 보험업계를 무리하게 감싸주다 빚어진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보험상품의 이율을 담합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최근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생보사 16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 초 공정위가 무혐의 결정을 내린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퇴직연금 물량 몰아주기 건에 대해 금감원이 8월 다시 문제제기를 하고 9월 현장 검사에 나섰던 것과는 처지만 뒤바뀐 채 또 한번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이날 "공정위 조치와 별도로 보험사들 간 담합이 이뤄졌다면 누가 어떻게 했는지와 소비자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금감원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 실태조사 전(前) 수순인 문제점 자체 분석 단계"라고 밝혔다. 금감원 이길수 검사기획팀장은 "아직 검사 계획은 없지만 지시가 내려온다면 조속한 검사 착수도 가능하다"면서 "다만 시기는 공정위 결정이 해당 보험사에 공식 통보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가 담긴 의결서를 12월 중순쯤 해당 보험사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공정위와 금감원은 상대방의 소관 업무를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감원 박한구 생명보험팀장은 "금감원은 2000년부터 매년 보험사들이 체력에 맞게 경쟁할 수 있도록 표준이율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경쟁 자체보다는 재무건전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공정위가 금융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담합 판정을 했다는 불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에 대해 공정위 송상민 카르텔총괄과장은 "사업자들 간 담합은 금융당국의 건전성 감독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는 금융당국이 경쟁법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담합을 방조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제시한 표준이율을 빌미로 보험사들이 담합에 나설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보완 없이 제도를 시행해온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내심 불쾌한 기색이다. 보험사들이 "금융당국의 지도에 따른 것일 뿐인데 공정위가 뒤늦게 제재를 하니 혼란스럽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데다, 2007년 공정위 측과 상호 감독규정에 따라 한쪽이 행정지도 한 사안에 대해선 다른 쪽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내용의 포괄적 양해각서(MOU)까지 교환하고도 체면을 구긴 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금융당국이 담합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묵인했다면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동향 파악이나 정보 공유 행위까지 공정위가 담합으로 보는 데엔 다소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금감원의 이번 조사 방침은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어쩔 수 없더라도 보험사들에게 최소한의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이번 금감원 조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를 보면 금감원이 소비자 편인지 보험사 편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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