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호놀룰루의 와이키키해변 가까운 곳에 호텔 할레코아가 있다. 하와이어로 '전사의 집'이라는 뜻이다. 주변 여느 호화호텔에 전혀 손색없는 입지와 시설이지만 사실은 미 태평양사령부가 운영하는 군 휴양시설이다. 주로 현역 및 퇴역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곳이다. 지난 주말 이 호텔 야외무대에서 수백 명이 모인 대규모 만찬행사에 참석했다. 흥겨운 하와이 전통공연 뒤 사회자가 참전용사들을 불러 일으켜 세웠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한국전, 베트남전, 최근의 이라크, 아프간전에 참전한 이들이 일어설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 테이블의 촛불 잔을 치켜들어 먼저 간 전우를 기억하는 순서에선 백발의 노병들이 눈물을 떨궜다. 만찬은 수백 명 참석자 전원이 기립해 'God Bless the USA(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자유를 우리에게 주고 죽어간 이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나는 미국인임을 자랑하노라'라는 가사의 그 노래다. 부축을 받아 일어선 노인과 할머니부터 펑크머리의 10대 자녀, 꼬마들까지 모두 하나가 됐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우리 같으면 아마도 유치한 국가주의, 위험한 국수주의로 냉소했을 그런 장면인데도.
■ 비슷한 감동은 미군포로실종자확인 연합사령부(JPAC) 방문 때도 받았다. 최근의 전쟁터는 물론 반세기도 훨씬 지난 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실종자를 찾아 히말라야 산록서부터 아프리카 사막, 북한 장진호까지 찾아 다니는 기구다. 손가락 마디만한 뼈 한 조각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최고의 법의학자, 인류학자들이 동원된다. 분석실 벽엔 '평화 시엔 아들이 아버지를 묻고, 전시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는 등의 비장한 글들이 씌어져 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은 산 자든, 죽은 자든 그들에겐 모두가 잊혀져서는 안될 영웅(hero)들이다.
■ 돌아오자마자 한국전 전사자에게 보상금으로 5,000원이 지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마저도 관련 부처들이 제 소관 아니라고 서로 미룬 끝에 마지못해 나온 결과였단다. 순간, 흙탕물을 온 몸에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보훈처 홈페이지 머리에는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ㆍ현재ㆍ미래입니다'라는 표어가 올려져 있다. 과연 현실에 딱 맞는 글귀 아닌가. 우리 현대사 전체를 온통 오욕과 실패의 보잘것없는 역사로 깎아 내리는 풍조가 횡행하는 현실이다. 이젠 여기에 더 뭐랄 것도 없겠다. 나라가 이런 인식을 앞장 서 조장하는 셈이니.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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