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은 이라크 처럼 미국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선제폭격을 흘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력도발도 대비해야 한다. 핵무기가 주변의 위협에서 안전을 지켜주는 최상의 방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 가까운 미래에 ‘핵클럽’에 가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 유엔 결의을 위반하고 우라늄 농축 작업을 지속해 온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도했다.
핵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애는 장비 노후화다. WP는 유엔 관계자가 수집한 통계를 인용해 “나탄즈 인근 핵시설 원심분리기에서 얻는 농축우라늄의 양이 장비 고장 때문에 급감했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은 “(장비 문제 때문에) 국제사회의 핵 서열을 단번에 무너뜨리려 했던 이란의 능력이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핵시설 교체작업도 지도부의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앞서 이란은 농축 속도를 4배로 높일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도입할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실제 들여온 제품은 초강력 합금인 마레이징강(鋼)이 아니라 탄소섬유로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다 2007년 이후 핵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4명이 잇따라 살해되고, ‘사이버 미사일’로 불리는 악성 바이러스 스턱스넷이 지난해 나탄즈 핵시설에 침투하면서 핵심 장비가 불능화한 것도 큰 타격이다. 이란은 과학자 암살과 스턱스넷 공격의 배후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있다.
미 외교가에서는 이란의 핵개발 차질과 최근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암살 시도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 등의 집요한 방해로 핵개발이 위기를 맞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강경파가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사우디 대사 암살이라는 비상식적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외교소식통은 “이란의 나쁜 짓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 암살 시도는 너무 특이하다”며 “포위된 상황에서나 나올 법한 무모한 행동인데, 그만큼 이란 지도부가 (핵개발 차질로) 좌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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