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연(24ㆍSK텔레콤ㆍ건국대 체육교육4) 때문에 전화를 하셨군요." 한국여자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 구옥희(55)씨는 기자가 전화를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구씨는 17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나연이 한국 선수 LPGA 100승 기록을 세운 것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최나연이 대단한 일을 했어요. 그 동안 LPGA 100승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쳐 아쉬웠는데 후배들이 큰 일을 해냈습니다. 정말 축하할 '사건'입니다."
그는 최나연이 100승을 하는 모습을 TV 중계로 보진 못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와 소식을 접했다는 것이다.
한국(계) 선수들은 16일 말레이시아에서 막을 내린 LPGA 투어 사임다비에서 최나연의 우승으로 LPGA 통산 100승 고지를 당당히 밟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1세대 주자인 구씨는 LPGA 무대를 개척한 선구자로 통한다.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문밸리 골프장에서 벌어진 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첫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가 최전성기였다. 80년 열린 국내 5개 대회를 모두 석권했으며, 79년 10월부터 81년 6월까지 국내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뒤 84년 일본 투어에 진출했다. 올림픽이 열렸던 88년엔 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에 출전, 7언더파 281타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구씨는 "LPGA 투어에서 처음 우승했을 때 한국은 올림픽 열기에 휩싸여 있어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면서도 "내가 후배들의 100승 달성에 밑거름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척박하기 짝이 없던 당시 국내 골프계를 회상하기도 했다. "80년대한국은 여자골프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어요.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복 받은 사람이었던 셈이지요. LPGA에서 우승을 한 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어요."
구씨는 공교롭게도 LPGA 투어 첫 우승 때, 한국에 통산 100승을 안겨준 최나연 처럼 1타차로 1위를 거머쥐었다."공동 2위 2명이 1타차로 쫓아오고 있었어요. 마지막 18번홀 3m 파 퍼팅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연장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파 퍼팅이 들어가더군요. 짜릿한 1타차 승리였어요."
그의 LPGA 첫 우승은 열악한 조건이었기데 더욱 빛났다. "지금 선수들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지만 당시는 혼자여서 외로웠어요. LPGA대회에 나갈 때는 혼자서 다니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LPGA 무대의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한 구씨는"후배들이 앞으로 200승, 300승을 향해 나갈 것이고 그 꿈을 이룰 것으로 본다"고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LPGA라는 곳이 아무래도 힘들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참고 인내한다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