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6일 저녁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뒤 평소처럼 안가로 가지 않고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일부 청와대 참모들을 불러 내곡동 사저와 관련한 긴급 논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귀국하기 전 이미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으로부터 '내곡동 사저 신축 계획 백지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입장을 보고 받은 상태였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5일 오전 서울시내 모처에서 임 실장을 만나 "청와대가 내곡동 사저 입주를 전면 재검토하고, 책임질 참모들은 책임지도록 해 사저 논란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의 일부 최고위원들도 임 실장과 따로 만나 내곡동 사저 백지화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당초 '내곡동 사저 내 경호시설 축소'까지만 요구했었지만,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사저 백지화 카드를 꺼냈다.
이 대통령은 귀국한 직후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16일 밤 여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사저 신축 전면 재검토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왔다.
청와대는 결국 당의 사저 계획 백지화 요청을 받아들였다. 청와대와 여권은 이달 초 사저 문제가 처음 불거진 직후엔 각종 의혹들에 대해 적극 해명해 정국을 돌파하려 했었다. 하지만 각종 추가 의혹들이 제기돼 내곡동 사저가 '비리의 온상'으로 비치게 되자 비판적 민심에 승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준표 대표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사저를 내곡동으로 이전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판단에 따라 청와대에 재검토하라고 통보했다"면서 "청와대가 당의 판단을 즉각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10ㆍ26 재보선을 앞두고 민심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 사저 문제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악재가 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고,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도 사저 계획 전면 재검토는 불가피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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