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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돈의 규칙만 있는 사회 통렬하지만 씁쓸한 풍자

입력
2011.10.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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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치펑(杜琪峰)은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 홀대 받는 홍콩 감독이다. 상업적 색채가 짙은 장르영화를 대량으로 만들다 자기도 모르게 대가가 된 인물이다. 한국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영화는 '우견아랑'(1989) 정도 아닐까.

지금 서구에서 가장 사랑 받은 홍콩 감독인 그의 대표작은 '흑사회'(2005)와 '흑사회2'(2006). 홍콩 폭력조직인 삼합회의 보스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처절한 암투를 통해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고발한다.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메타포를 담고 있기도 한데, 머리 복잡한 내용이 끔찍하게 싫은 관객도 금세 빠져들 누아르 영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작품들이지만 한국에선 정식 개봉하지 못했다. IPTV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영화팬을 자처한다면 꼭 봐야 할 수작들이다(두치펑의 또 다른 수작 '매드 디텍티브'도 IPTV에서 만날 수 있다).

두치펑의 신작 '탈명금'을 지난 14일 막을 내린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 때문에 울고 웃는 홍콩의 여러 인물 군상을 내세워 현대 금융자본주의를 조롱하는 영화다. 암흑가 인물들에게 주로 조명을 비추고, 홍콩 누아르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이어가던 두치펑의 전작들과는 거리가 먼 작품. 두치펑의 여느 영화들처럼 투박하면서도 명쾌하고 여전히 재미있다.

'탈명금'엔 최근 지구촌이 직면한 금융위기의 실체를 직설적으로 다루는 장면들이 많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위험도 높은 금융상품을 무지렁이 같은 서민에게 감언이설로 팔아 치우는 은행 직원, 제도권 금융이 혼돈에 빠지자 신바람이 난 사채업자 등을 통해 배금주의 세태를 비판한다. 은행 직원이 시키는 대로 앵무새처럼 "(금융상품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했습니다"라고 반복하는 한 고객의 모습은 돈에 관해선 똑똑한 척 하지만 실은 무지한 대중을 상징한다.

일자무식인 주먹도 등장한다. 주식보다 마작이 더 친숙하고, 숫자는 보석금 마련하고 자릿세 뜯을 때나 사용할 듯한 인물인데 우여곡절 끝에 선물투자로 일확천금을 쥐게 된다. 돈 놓고 돈 먹는 거대한 도박판 같은 현대 금융시장에 대한 에두른 비판이다. '탈명금'의 영어 제목은 'Life Without Principle'(원칙 없는 삶). 복잡다단한 금융공학이 지배하는 이 사회는 돈의 규칙을 제외하면 원칙 없는 사회라고, 탐욕스런 금융인을 빼면 다들 자기 재산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영화를 말한다. 통렬하지만 씁쓸하다.

라제기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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