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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조용한 반란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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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조용한 반란을 꿈꾼다

입력
2011.10.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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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시중은행과 공기업 민영화가 한창 추진되고 있을 때였다. 고교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물었다. "알짜 기업들을 외국 자본에 내다 파는 것이 옳은 거냐." 해외 자본 유치가 지상 과제처럼 얘기되던 당시 분위기에서 그의 물음은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것이 살 길이란다"라고 싱겁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공무원으로서 남다른 애국심을 은연중에 드러냈던 그 친구는 내가 경제부 기자라고 하니, 자신은 얼른 납득할 수 없었던 그 심각한 문제에 대해 뭔가 그럴듯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답답함을 풀어주진 못했다. 그 무렵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의 맨 앞에 선 아일랜드는 최선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언론들은 그 몇 해 동안 아일랜드 현지 취재에 열을 올렸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급전직하한 그 나라의 처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승자독식 체제 수명 다해

그 시절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말이 글로벌이지, 실상 그것은 '아메리칸 스탠더드'라고 할 만했다. 심지어는 미국 기업 CEO들의 천문학적 규모의 연봉을 들먹이며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훌륭한 CEO가 나오고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적 자금 투입으로 기사회생했던 시중은행 임원들의 연봉은 그 몇 년 새 몇 배로 뛰었다. 그래서 그들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신자유주의 이념의 세계화가 가져온 지난 10여 년의 변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겐 경제적으로 많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엄청난 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의 그늘은 너무 크고 짙어서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그 조종(弔鐘)이었던 셈이다. 승자독식의 체제가 오래 갈 수는 없다. 그것은 '정의' 이전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 국면에서 세계는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 체제 아래서 기득권을 누려온 '1%'들의 저항은 거세다. 1%로 상징되는 이들의 숫자는 적지만, 그들의 힘은 절대적이다. 99%에 속한 유권자들 중에도 적어도 20~30%는 항상, 그리고 때로는 절반 이상이 1%의 논리를 지지한다. 변화가 어려운 이유다.

세계 금융의 심장인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99%의 반란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에선 동조가 더디고 참여가 미약하다. 15일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조직되기까지 서울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이날 집회도 과거 유사한 성격의 시위 규모에는 크게 못 미쳤다.

변화 욕구 투표로 표출하길

사정이 달라서인가. 금융자본의 악마적 행태에만 초점을 맞추면 월가와 우리 금융자본은 그 정도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양극화와 청년실업, 개방으로 인한 피해 등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는 모두 같은 지점에 닿아있다. 내재해 있는 불만의 크기, 변화의 욕구는 오히려 다른 선진국들보다 크면 크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불만의 표출 방식이 언제부턴가 달라진 것은 아닐까.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위력을 실감한 뒤부터 굳이 거리로 나설 필요가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 마감 직전 힘을 모았던 것처럼, 그리고 지난달 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이 결집했던 것처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당장 눈 앞에 다가온 10ㆍ26 재보선에서 조용한 반란을 꿈꾸는 것은 이런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김상철 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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