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과 언어는 달랐다. 시위 풍경과 규모도 달랐다. 하지만 금융권의 탐욕과 빈부격차 확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같았다.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시작 1개월을 이틀 앞둔 15일 세계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빈부격차와 불평등에 반대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고 CNN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참가자들은 자본주의와 긴축정책을 한 목소리로 규탄했으며 이탈리아 로마 등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
시위는 시간 순에 따라 아시아권에서 먼저 시작했다. 일본 도쿄(東京)의 부유층 거주지 롯폰기와 히비야 공원에서는 이날 낮 빈부격차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빈부격차는 인간의 긍지를 파괴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행진을 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중앙은행 앞 광장에 모였으며 멜버른, 브리즈번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반월가 시위가 벌어졌다. 대만 타이베이, 홍콩, 뉴질랜드 등에서도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유럽의 시위는 규모가 컸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수십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들 중 일부가 차에 불을 지르고 건물 창문을 부수는 등 과격 양상을 보이며 경찰과 충돌해 70여명이 다치고 10여명이 체포됐다. 로마 시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불신임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것에 대한 분노와 맞물려 과격해졌다.
유럽연합(EU) 수도 브뤼셀에서는 유럽 각국과 미국, 아시아에서 건너온 6,000여명이 긴축재정 반대를 외치며 행진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브뤼셀까지 1,700㎞를 걸어온 일부 참가자는 23일 EU 정상회의 때 다시 시위를 할 예정이다. 2,000여명이 모인 영국 런던 세인트폴대성당 앞 시위에는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동참했다.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오포르토에는 2만여명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수만명이 각각 모였으며 그리스의 아테네와 테살로니키에서는 2,000여명이 긴축정책 반대 시위를 했다.
미국 뉴욕에서는 주코티 공원을 출발한 시위대 1만여명이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모여 시위를 했는데 구경꾼, 관광객, 경찰이 뒤섞여 혼잡을 빚은 끝에 80명 이상이 경찰에 붙잡혔다. 시위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원자력발전, 수도회사 민영화 등에 반대하는 등 다양한 주장을 폈다. 수도 워싱턴에서는 2,000명,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5,000명이 참가하는 등 미국에서만 100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다. 이밖에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동조시위가 열렸다.
월가 시위 계속될까
세계적 동조현상을 일으킨 반월가 시위가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시위대는 1960년대 미국 시민운동이나 올해 아랍의 봄 시위가 이렇다 할 지도자 없이 전개됐다고 주장한다. AP통신은 일부 전문가들이 시위대의 구심점이 없는 것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토드 기틀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월가 시위대는 반전운동이나 시민권운동보다도 더 빠르게 대중적 지지를 얻어냈다"며 "이들에게 문제는 지도자 부재가 아니라 시위대와 시위를 지지하는 외부인들의 철학 차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핵심 지도자가 없으면 대중과 언론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가브리엘라 콜먼 뉴욕대 미디어문화커뮤니케이션부 교수는 "결국 핵심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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