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이창복 지음/김영사 발행·700쪽·3만3,000원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독문학적 입장에서 음악을 미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라고 책의 도입부는 솔직히 밝힌다. 미상불 제목은 일반론적이지만 실제 내용은 독일쪽 이야기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책을 단단하게 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저자 이창복(75)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독문학자이면서 동시에 예술문화사가, 평론가, 미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말하자면 그의 인문학적 다면성이 통합된 결과다. 쾰른대 유학 시절부터 음악과 깊은 연관을 맺고 독문학을 공부한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개인적 경험이 짙게 밴 책이다. 독문학자로서 걸어온 학문적 경로, 자신의 학문 세계와 연관해 독일의 음악을 이야기한다. 책의 논의는 그래서 풍성하고, 결론은 열려 있다. 여타 음악 이론서와 차원을 달리하는 결정적 이유다.
700쪽에 달하는 하드커버 안은 인문학적 사유 아래서 살펴본 음악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바그너와 니체를 기점으로 해 독일이 근대 국가로 발돋움 할 때의 예술과 학문의 풍경을 담아낸 대목에는 저자의 유장한 관점이 인상적으로 드러나 있다.
바그너는 게르만족의 영광을 꿈꾼 정치적 예술가이기에 앞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등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담지할 독자적 오페라 양식의 주창자였다. 책은 "바그너가 낭만파의 브루크너와 말러…(중략)… 쇤베르크와 같은 20세기의 중요한 작곡자에게 미친 영향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라며 바그너를 집중 논의한다. 저자 특유의 관점은 초인의 철학자 니체와 바그너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대목에서 뚜렷해진다.
한때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의 본질이 부활할 수 있다며 바그너 숭배의 마음으로 <비극의 탄생> 을 썼던 니체는 말기의 책 <바그너의 경우> 에서는 바그너를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의 대표로서 음악을 병들게 한 주범이라며 옛 관점을 말끔히 씻어 냈다. 책은 바그너 음악을 열렬히 찬미하던 니체가 그와 결별하게 되는 과정을 마치 한 편의 다큐 드라마처럼 재현, 예술과 사상이 결코 둘이 아니었던 시절의 풍경을 보여준다. 총체성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 예술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바그너의> 비극의>
문학비평서를 방불케 하는 정교한 인용과 설명 등 특유의 서술 방식은 독일 인문주의를 계승한 소설가 토마스 만을 언급하는 대목에 이르러 더욱 빛난다. 시민과 예술가라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체제 사이에 서 있는 존재의 갈등을 그린 '토니오 크뢰거', 시민사회의 데카당스에 대한 비판 수단으로서 음악의 역할 등을 독일 지성사의 큰 흐름에서 논의한다. "바그너에게서 '많은 히틀러'를 보았다"는 토마스 만의 발언은 곧 독일 역사의 아이러니를 꿰뚫는 저자의 시선일 것이다.
독일 예술사에서 음악과 문학의 결합은 중세 궁정문학, 13세기의 서사시'트리스탄과 이졸데', 찬송가를 대중화한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 등을 거치면서 강고해진다. 음악에 대한 괴테의 굳은 믿음은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기의 혁명적 사상가 실러에게 이어져 결정적으로 베토벤이라는 대하로 이어진다. 이 같은 거대한 열정은 낭만주의를 맞아 영혼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독일 시민사회가 미성숙한 탓에 파시즘을 부르며 파탄에 빠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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