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의회가 한미 FTA 이행 법안을 처리함에 따라 민주당이 요구하는 '재재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소상공인이나 농축산업 등 피해 분야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당장 비준안 처리에 응할 수도 없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 지도부의 비준안 처리 반대 입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의 목표가 틀리면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정부를 향해 한미 FTA 재재협상 착수를 거듭 촉구했다. 손 대표는 "우리나라가 '덩달아 나라'는 아니다. 미국에서 비준했다고 우리나라가 덩달아 빨리 비준해야 할 이유는 없다"며 "잘못된 조약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도부의 강경 입장은 당내 강경파인 정동영 최고위원 등 3명을 FTA 담당 국회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에 임시 배치시킨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당내 분위기는 단일대오처럼 보이지 않는다. 재재협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다 비준안 처리 반대가 코앞에 닥친 10ㆍ26 재보선이나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내 일부에서는 "강경 입장만이 능사는 아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FTA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공업도시를 지역구로 가진 의원들이 유연한 대응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류 변화는 지도부 일부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한 최고위원은 "FTA 처리를 계속 반대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며 "정부와 한나라당도 최대한 노력해야겠지만 교착 상태를 1개월 이상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협상을 통한 문구 수정은 어렵게 됐기 때문에 양국 실무자 협의를 통해 논의 근거를 문서로 남기는 방안을 정부와 여당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담을 갖고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한 절충을 시도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여야는 17일 외통위 법안심사 소위에서'끝장토론'을 한 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김정곤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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