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오기 오가스 등 지음ㆍ왕수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 발행. 528쪽. 1만6,800원
기괴한 성적(性的) 상상을 하며 혹시 내가 변태 아닐까 생각했던 사람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책 39쪽을 보자.
“웹은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해주죠. 당신이 아무리 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진 돌연변이라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런 녀석이 수백만 명 널려 있거든요. ‘발정난 염소와 섹스하는 사람들을 찾아주세요’라고 검색창에 치면 컴퓨터가 이렇게 묻죠. ‘염소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말하시오.’”
책을 쓴 오기 오가스, 사이 가담은 미국 보스턴대에서 함께 인지신경 시스템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컴퓨터 공학을 기반으로 기계적 특성을 보이는 인간의 두뇌 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복잡한 설명보다 보스턴대 홈페이지에 띄워둔 가담의 ‘연구 관심’을 보면 작업 내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컴퓨터 신경과학, 로맨틱한 매력, 그리고 성적 욕망.’
서두에서 지은이들은 1886년이라는 시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886년은 하인리히 헤르츠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라디오를 만든 해이고,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이 <성의 정신병리> 라는 책을 펴낸 해다. “한 사람(헤르츠)은 바깥으로 눈을 돌려 물리적 우주 속에 숨겨진 패턴을 연구한 반면, 한 사람(크라프트에빙)은 마음의 비밀스러운 작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기 위해 내면을 응시”했다는 것인데, 계보를 따지자면 크라프트에빙의 후학인 저자들은 탄식조로 이렇게 말한다. 성의>
“현대의 전파물리학자들은 지구 밖의 생물체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까지 만들어냈건만, 성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아직도 남자와 여자의 성적 관심사-그것은 인류가 아프리카의 계곡에서 처음 말을 튼 이래로 계속해서 골몰해온 주제였다-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해 악전 고투를 벌이고 있다.”(30~31쪽)
저자들이 꼽는 근원적 한계는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이다. 헤르츠를 이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어떤 압박도 받지 않고 조용히 레이더와 엑스레이 연구에 전념한 반면, 크라프트에빙의 지적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미디어의 조롱거리가 되거나 형사소송을 당하거나 일자리에서 쫓겨나야 했다는 것. 하지만 20세기 말의 혁명적인 발명품으로 인해 그 어려움이 말끔히 해소됐다고, 저자들은 환호한다. 그것은 인터넷이다.
구글, 야후, 빙 등의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 검색 기록이 데이터로 남는데, 이 ‘디지털 발자국’을 추적해 성에 대한 욕망을 들여다본 결과가 이 책이다. 10억 건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해 저자들은 시각적 자극에 목을 매는 남자와 심리적 신호에 반응하는 여자라는 명제를 도출한다. 학문적 결론보다 <킨제이 보고서> 의 세대는 닿을 수 없었던, 순도 100%의 로(law) 데이터를 접할 수 있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서양의 포르노사이트와 로맨스 소설만 자료로 삼았다는 한계는 있다. 동아시아의 광활한 야동의 세계가, 이 책엔 없다. 킨제이>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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