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프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누구일까?
이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는 누구일까?
각자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김정호다.
하루에 평균 19곡이 나가는 우리 프로그램에서 나는 최대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좋은 가요를 선곡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모든 노래에 청취자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김정호의 노래는 다르다. 김정호의 노래가 나가면 참 많은 청취자들이 좋아하고 그를 기리는 문자를 보내온다.
특히 요즘 같이 가을이 절정을 이룰 때면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위엔 또다시 황금물결’로 시작되는 ‘날이 갈수록’이나‘하얀나비’의 전주만 울려퍼져도 문자가 많이 온다.
신청곡이 많이 오는 곡 베스트3에 꼽힐만한 ‘하얀나비’는 김정호의 노래 중 비교적 템포가 있는 곡이지만,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말아요’로 맺을 때쯤엔, 역시나 지금은 이별이라는 사실에 슬픔이 온 마음에 스며들어버린다.
청취자들의 문자를 보면 그가 떠난지 25년이 훌쩍 넘었건만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김정호는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유난히 불우했던, 그 불우함이 외면으로도 뚜렷이 풍겨져나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김정호.
수많은 곡을 직접 작곡, 작사했던 실력파 뮤지션이었지만, 그가 대중적으로 사랑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그 이름을 드높일 즈음,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8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실상 그의 노래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었다.
너무나 처연하게 쓸쓸해서 그의 노래 몇곡을 연달아 들으면 그냥, 축 늘어져 인생이 마냥 허무하게 느껴지던 그의 노래가 청춘시절엔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온 요즘엔 김정호의 노래가 온마음으로 이해가 되고 눈물겹게 좋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김정호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세여자, 아내와 쌍둥이 두 딸을 TV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남편만큼이나 수줍음이 많고 갸날픈, 그러나 참으로 너무 고와서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그의 아내는 지금, 어디서 사랑하는 남편의 노래를 듣고 있을까. 쌍둥이 딸들도 잘 자라서 아빠의 음악성을 물려받았을까?
괜시리, 김정호의 노래를 들으면 하얀 상복을 입고 있었던 세 여자가 나는 동시에 떠오른다. 결혼, 가정...이런 단어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보였던 김정호.
그러나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다던 김정호. 그래서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두 사람의 사랑.
그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얼마나 주옥같은 음악을 우리 곁에 선물로 내놨을까. ‘날이 갈수록’, ‘하얀 나비’,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님’, ‘달?Ю牽?? ‘이름모를 소녀’, ‘세월 그것은 바람’...
이토록 좋은 노래를 그래도 우리에게 남겨주고간 김정호가 떠난 11월이 다가온다. 슬픔 그 자체였던 김정호였기에 역설적으로 우리의 슬픔은 그의 노래로 위로받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참, 그가 그리운 가을이다.
/조휴정ㆍKBS 해피FM 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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