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1일. 인천세관 소속 수사관 4명은 서울 수유동 사거리의 우이시장 골목 입구에서 이틀째 잠복근무 중이었다. 오후 2시경 드디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용의자가 나타났다. 수사팀은 짐을 모두 싣는 것을 확인하고 차량을 덮쳤다. 이사박스에는 파란색 알약이 가득 담긴 봉지가 수백 개나 있었다. ‘짝퉁’ 비아그라였다.
이날 붙잡힌 일당은 30대의 노모씨 형제. 인천본부세관은 거대 밀수조직이 활동하고 있다는 단서를 잡고 1년 넘게 추적한 끝에 이들의 검거에 성공했다. 국내 판매를 담당했던 동생 노씨는 그 동안 경찰의 추적을 눈치채고 어머니의 집에 물건을 숨겨놓은 채 중국으로 도피했다. 그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중국에서 공급책을 맡고 있는 형의 집으로 밀수품을 옮기려다 꼬리가 잡혔다.
적발된 양은 총 20여만정, 무게로는 1톤이 넘었다. 이들은 약 1년 간 모두 930만정의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밀반입했다. 관세청 역사상 최대의 짝퉁 발기부전치료제 사건이었다.
국내 ‘짝퉁’비아그라 시장은 ‘짝퉁’가방시장 못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짜 발기부전치료제 밀수규모는 1,123억원으로 가짜 명품가방(1,072억원)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2007년 적발금액(62억 원)에 비하면 4년 만에 20배가 늘어난 것.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력제라면 불물을 가지 않는 우리나라 남성들, 그리고 부피가 작아 상대적으로 밀수가 용이하다는 점이 이 시장을 계속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검거한 인천세관 김영기 계장은 “노씨 형제는 밀반입한 930만정 가운데 910만정을 팔았다”며 “이는 정품 발기부전치료제의 연간 판매량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성인 남성인구를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비아그라 정품 한 알 가격은 보통 1만원대. 하지만 짝퉁은 1,000원 정도에 사들여 최소 5,000원에 판매한다. 노씨 형제는 이런 수법으로 무려 3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남겼다. ‘수익성’이 이처럼 높다 보니 전문 밀수조직들이 앞다투어 이 분야에 손을 대고 있다고 한다. 사실 노씨 형제도 발기부전치료제뿐 아니라 위조 명품시계와 가방, 신발 등을 밀반입하는 전문조직으로, 사망자 명의의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만들어 사용하며 전국적인 판매 조직망을 갖추고 있었다.
세관에서는 1차로 컨테이너 검색기를 돌리고 2차로 조사관들이 무작위로 화물을 수색하는 방식으로 스크린을 한다. 비아그라의 경우 소파나 테이블의 밑을 벗겨내 테이프를 붙여 들여오는 수법이 많다. 간혹 대리석에 구멍까지 내서 20만 정을 반입한 경우도 있었다. 김 계장은 “비아그라는 작은 공간에도 넣을 수 있어 색출하기가 아주 까다롭다”며 “흔들어보거나 무게를 짐작해보는 등 의심이 가는 사람의 짐은 샅샅이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판매는 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뤄지며 “직수입 정품 비아그라/ 밀봉 30정 알미늄 캡슐” 등의 휴대폰 문자나 도로상의 이동식 성인용품점도 주요 판매처다.
짝퉁 제품을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인천항의 밀수품 보관 창고에 직접 들어가 짝퉁 제품을 살펴봤다. 창고 안에는 온갖 종류의 위조품들과 함께 10여 봉지의 가짜 비아그라가 전시돼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색깔이 조금씩 다르고 조잡하게 제조된 흔적이 역력했다. 인천세관 이광록 반장은 “색깔이 다른 것만 봐도 성분이 제 각각인 것을 알 수 있다”며 “주변에 복용해보고 싶다며 한 알만 빼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약을 제조하는 과정을 알면 먹어볼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대한남성과학회와 식약청이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수거해 조사한 결과 성분이 일정치 않고, 납과 수은 등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중국의 공장을 급습한 결과 색을 내기 위해 도로용 페인트를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가짜 비아그라를 먹고 설사나 구토, 근육마비, 안구 통증 등을 겪었다는 부작용 사례도 많다.
제조회사들도 가짜 근절을 위해 나서고 있다. 비아그라를 생산하는 화이자제약 본사는 아예 글로벌 시큐리티팀(GST)을 운영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나 관세청 등 보안 기관에서 일한 경력자로 이뤄진 이 팀은 지역별 거점을 두고 해당국 정부와 함께 제조공장을 급습하기도 한다.
제약사들은 소비자들이 짝퉁을 구별할 수 있도록 포장박스에 홀로그램을 부착했다. 화이자는 2008년 비아그라 박스를 직각으로 세우면 파란색, 기울이면 보라색으로 변하는 홀로그램을 도입했다. 동아제약도‘자이데나’에 위조방지기술이 적용된 홀로그램을 채택했다. 한국화이자제약 관계자는 “비아그라 출시 이후 4차례에 걸쳐 포장단위를 변경하는 등 정품구별을 강화했으며 부작용을 알리는 활동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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