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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손실만을 감당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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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손실만을 감당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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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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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시위의 탄생은 의외였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가장 자유로운 나라, 부를 능력으로 인정하는 꿈의 나라에서, "우리는 99%다"는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구호로 뭉친 시위대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업자 무리로 시작한 노숙 시위는 생활고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급속히 대학생, 시민으로 세력을 불린 데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꾹꾹 억눌린 미국의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정체 모를 파생상품 놀이 끝에 폭발한 금융기관의 손실을 7,000억 달러(810조원)의 세금으로 메꿔야 했던 억울함이었다. 그러고도 보너스 잔치를 벌인 월가를 향한 분개였다.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던 헨리 폴슨이 재무장관이 되는 식의 '1%의 유착'이 이 같은 불합리의 원인이라는 깨달음의 항거였다. 금융기관, 우량 등급을 남발한 신용평가사, 감독은 않다가 재정만 바닥낸 정부의 책임은 국민에게 전가됐고, 올해 두번째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를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구조"라고 일갈했다.

15일 첫 '점령(Occupy) 시위'를 앞둔 우리는 어떤가. 올들어 영업정지를 당해 서민 돈 수천억원을 떼먹게 된 저축은행 사태는 본질적으로 같은(더 노골적인) 일이다. 저축은행은 불법 대출과 회계 조작으로 부실을 쌓았다. 하지만 뇌물, 대출소개비를 받아챙긴 금감원 직원은 관리감독에 눈을 감았다. 애초에 '퇴직 후 옮길 직장'을 제대로 검사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검찰도 감사원이 불법 대출을 적발한 2008년에 손을 써 손실을 줄일 수 있었던 기회를 그냥 날렸다.

물론 연루된 개인들이 부도덕하다. 그런데 2003년 카드대란, 2001년 동방금고 사건, 1997년 외환위기 시발점인 종금사 부실 등 반복되는 역사를 보면 직무유기는 구조적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시장 개방,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외치는 신자유주의가 금융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할 뿐이라고 줄곧 역설해왔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듯 공정한 경쟁룰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월가의 분노가 상륙하려는 지금 우리는 이 금융자본 문제를 진지하게 반추할 필요가 있다.

구제금융을 받고 IMF의 요구 조건을 모두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대형 금융자본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됐다. 투기자본을 견제할 장치 없이 활짝 개방된 우리 금융시장은 글로벌 위기에 극심하게 출렁인다. 일부의 견해처럼 실물이 튼튼하다 손치더라도, 쓰나미처럼 닥칠 수 있는 금융위기는 별개의 위험이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적 환경 변화는 중산층 몰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빅딜을 거쳐 정글에 내던져진 대기업은 오히려 경쟁력이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중소기업, 저임금 비정규직의 희생이 따랐다. 실업난 청년, 조기 퇴직 후 자영업 경쟁에 시달리는 중년층의 삶의 질은 경제성장률로 체감되지 않고 있다. 소득 불평등을 뜻하는 지니계수는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 0.264에서 지난해 0.315로 악화했고, 상대적 빈곤율도 8.7%에서 14.9%로 늘었다. 그동안 반값 등록금, 전셋값 인하, 해고자 복직 등 생계형 구호로 표출돼온 사회불안의 밑바탕에는 금융자본의 탐욕과 남의 손실을 떠안은 희생자가 있다.

월가 시위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자각한 결과물이다. 근래 미국에서 보기 드문 계급투쟁적인 거대담론이다. 15일 여의도는 어떤 구호가 점령할 것인가.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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