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삶을 살았고,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오늘을 산다. 한때 권투를 했던 몸은 탄탄하고, 말수 없는 모습이 "남자답게 생겼다"(영화 '오직 그대만'의 대사).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듯한 순정남 철민엔 소지섭이 스크린 안팎에서 보여온 무거운 이미지가 포개진다.
소지섭이 오랜만에 멜로와 만났다. 2004년 TV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7년 만이다. 스크린에선 처음으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2년만의 충무로 복귀작 '오직 그대만'(감독 송일곤ㆍ20일 개봉)을 통해서다. 13일 낮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은 "드라마와 달리 멜로 영화는 감정 유지가 쉽지 않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오직 그대만'은 정통 멜로다. 파격적인 내용이나 장면을 선사하기보다 기존의 멜로 문법에 충실하다. 전직 권투선수 철민이 시각장애인 정화(한효주)의 시력을 되돌려주기 위해 자신을 버리려는 사연이 눈물을 부른다. 때론 우수에 젖고 간혹 분노로 이글거리는, 소지섭의 눈빛연기만으로도 여성 관객들의 심장박동 수가 높아질 듯한 영화. 소지섭은 "뻔한 내용이면서도 관객들이 가슴 아파할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무턱대고 사랑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나이도 있고, 주변 시선도 의식해야 하니…. 영화 속에서라도 미친 듯이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영화에는 철민이 정화를 꼭 껴안고 빙글빙글 도는 장면이 등장한다. 어둡고 과묵한 평소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 소지섭은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정말 어색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동작"이라며 머쓱해 했다. 그러면서도 "어두운 이미지의 영화들이 잘돼서 그렇지 저 원래 잘 웃는다. 의외로 코믹한 연기도 꽤 했다"고 말했다.
몸 좋고 운동신경도 좋기로 소문난 그지만 실제 이종격투기 선수 위승배와 일전을 겨루는 장면을 찍을 땐 신체적 고통이 따랐다. "(위승배의) 손이 몸에 닿기만 해도 뼈까지 아팠다. 힘에 자신 있는 나도 촬영에 들어가면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고 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기 욕심은 있어요. 연기 못한다는 소리를 제일 싫어해요. 어떤 분들은 막 떠들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확 변하는데 전 그렇게 못해요. 촬영 전날 밤부터 '이 사람 어떻게 하지' 하며 잠을 설쳐요."
그는 최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연기 슬럼프에 빠진 듯하다'는 말을 해왔고, 이날도 "요즘 정말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며 연기하는 스타일인데 내 안에 담겨 있는 게 모두 바닥 난 것 같다"는 게 나름의 분석. 그는 "다시 뭔가를 채우지 않고 촬영 현장에 나가 계속 쥐어짜야만 하니 힘들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서른 넷,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다. 그는 "마흔 전에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전제 조건은 믿음. "나이와 상관 없이 서로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자와 사귀면) 가능하면 존칭을 쓰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좋은 느낌이 오래 가죠. 전 욕하는 것도 너무 싫어하는 성격이거든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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