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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판 월가 점령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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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판 월가 점령시위

입력
2011.10.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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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시위가 4주째 이어지면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급기야 캐나다, 호주를 넘어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 참가자도 초기에는 젊은 층 중심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계층과 연령으로 넓혀지고 있다. 8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15일에는 전 세계 25국 약 400개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금융권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화근

다른 나라보다 부의 집중과 축적에 관대한 미국에서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시위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고, 또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유례가 없던 일이다. 월가 시위가 이처럼 지속적인 파급력을 갖는 이유는 첫째,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경제침체와 재정위기에 직면해 긴축정책을 채택하면서 복지예산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증가해 서민들의 경제상황이 계속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미국 서민들이 실업과 집값 폭락을 경험해야 했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월가는 고통 분담은 고사하고 탐욕과 도덕적 해이 상태에 있다. 둘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여 서민들의 생활은 계속 악화되고 있음에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좌절감이 사람들을 거리에 나서게 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셜 미디어에 의해 정보 교류와 대중 동원이 수월해진 현실도 대중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가 시위현장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중계되면서,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시위대의 행동 계획도 구체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는 월가 점령시위가 조만간 한국에도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15일을 행동의 날로 정하고 여의도에서 금융자본 규탄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경제 침체와 소득 불평등 심화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쌓여가는 한국의 상황이 미국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시위가 조직화 된다면 적지 않은 국민들이 시위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연구원의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체감경제는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9월 말 조사에서 경제상황이 호전되었다는 여론은 9.4%까지 줄어들고 반대로 악화되었다는 여론이 59.4%까지 올라갔다. 또한 가정경제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여론이 36.5%로 나타난 반면 호전되었다는 평가는 6.8%까지 떨어졌다. 특히 하위계층에서 가정경제 상태가 나빠졌다는 응답비율이 44.7%로 상위계층과 중산층에 비해 높게 나타난 것은 심화된 경제양극화를 하위계층이 체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금융 규탄시위가 격렬해 질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얼마 전의 부실 저축은행 퇴출과정에서 다수의 서민들이 피해를 입었고 각종 부실 대출과 비리가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규탄하고 금융 감독기관의 책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번 시위에서 결집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식 자본주의 성찰 계기돼야

월가 점령시위가 미국사회를 흔들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조만간 유사한 대중시위가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한국 사회가 취해야 할 자세는 그동안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추종했던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재점검하는 일이다. 또 심각해진 경제 양극화 추세에서 피폐해진 민생을 해소하는 제도와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월가 점령시위가 확산되는 상황은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사회적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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