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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골프의 저주' 공직자 사퇴… 낙마…구속…필드에 도사린 질긴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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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골프의 저주' 공직자 사퇴… 낙마…구속…필드에 도사린 질긴 악연

입력
2011.10.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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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광으로 알려진 고위 공무원 A씨는 벌써 세 달째 골프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 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옛말을 되뇌며 골프 연습장 출입도 자제하고 있다. 6월부터 내려진 골프 금지령이 때문이다. 향응성 연찬회와 뇌물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골프와 함께 특혜 소지가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며, 적발 시 승진제외ㆍ공직배제 등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공개 경고를 한 것. A씨는 "주말이면 골프 생각이 간절하지만 자칫 시범케이스로 걸릴 수도 있어 아예 골프채를 눈에 안 띄는 곳에 옮겨 놓았다"고 말했다.

최근 골프를 멀리하는 공무원은 A씨만이 아니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관리소홀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금융감독원도 전 임직원에게 '골프 및 노래방 금지령'을 내렸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도 골프 금지령 상태다.

공무원 골프의 현 주소

공무원 복무규정에 '골프 금지'라는 항목은 없다. 공식적으로 자기 돈으로 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직자 골프장 출입이 자유로웠던 노무현 정부 때 국가청렴위원회가 "모든 공직자들은 비용을 누가 부담하든 직무와 관련된 사람과 골프를 칠 수 없다"는 지침을 정했다. 또 직무와 관련된 사람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골프를 칠 경우에는 미리 소속 기관장이나 감독기관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대법원도 비슷한 행동강령을 마련했다.

이런 지침 마련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주인공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비교적 늦은 40대에 골프에 입문한 이 전총리는 온갖 구설수에도 "다른 것은 양보해도 골프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다, 결국 골프 때문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06년 3ㆍ1절에 부산에서 지역 상공인들과 라운딩을 한 게 결정타였다. 앞서 2005년 4월5일 낙산사 소실 등 강원지역에 대형 산불 발생시 총리실 간부들과 골프를 즐겨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 7월 남부지역에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제주도에서 골프를 쳤다.

역대 최단명 교육부 차관이라는 기록을 남긴 이기우 전 차관도 이 전총리와 함께 '3·1절 골프' 파문에 휘말리면서 취임 43일 만에 퇴임했다. 김진표 전 부총리도 경제부총리 때인 2004년 9월 태풍 '매미'로 비 피해가 극심했을 때 제주도에서 골프를 쳐 구설수에 올랐고, 이승재 전 해양경찰청장은 2005년 5월 보트 전복으로 7명이 숨진 사고가 수습되기 전에 휴가지에서 골프를 즐겨 비난을 받았다.

현 정부 들어서 2009년 검찰총장 후보자였다가 중도 사태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경우 후원을 받던 기업인과 골프여행을 갔으면서도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난다"고 거짓해명을 하다 결국 청와대가 천 후보자 내정을 공식 철회하기도 했다.

공직자의 골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접대성 골프' 때문이다. 골프는 운동이지만 분명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골프를 치면 평소 만나기 조차 힘든 고위공직자와 함께 4~5시간 동안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며, 골프가 끝난 후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청탁을 하기에 그 보다 좋은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의 경우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골프 라운딩에 이어 수천만원대 고급 골프채 세트 등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 됐다. 검찰 관계자는 "주말에 한 번 라운딩을 나가면 일인당 30만원가량이 들고, 골프채 세트는 100만원이상의 고가다. 이런 골프를 함께 즐기는 사이라면 명절 때 으레 선물도 주고받는다. 청탁 없이 이런 관계가 성립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권 따라 부침해 온 공무원 골프

현 정부 초기인 2008년 류우익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공직자 기강세우기 일환으로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이후 남북간의 위기국면이 이어지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휴일 골프장 출입은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검ㆍ경찰, 국세청, 국방부, 금감원, 행안부, 국토부 등 평소 청탁의 유혹이 많은 '힘 센' 기관은 수시로 기관장들이 나서서 골프 금지령을 내리고 있다.

반면 노무현 정부 시절은 공직자가 가장 자유롭게 골프를 치던 시기다. 노 대통령은 2003년 6ㆍ15 공동선언 3주년 때 아무런 기념행사도 갖지 않은 채 청와대 참모들과 '우중(雨中) 골프'를 쳤고, 같은 해 11월에는 충북 충주시 시그너스 골프장에서 후원자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과 부부동반으로 라운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스스로 골프를 치진 않았지만,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내수진작이 절실하다는 필요성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골프 대중화를 추진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골프는 특권층만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퍼블릭골프장 개발을 지시했을 정도다.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등 군인 출신 대통령은 모두 골프를 즐겼다. 박 대통령은 한장상 프로에게 골프를 배워 실력도 상당한 수준급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타자'라는 명성을 들었던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골프연습장까지 만들었다.

청와대 골프연습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주하면서 즉시 철거됐다. 김 대통령은 "재임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공무원들은 "문민정부 5년이 공직자 골프의 최대 암흑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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