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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자영업자 4중고 5중고 "못살겠다/ 카드수수료·부가세·임대료 떼면…사장이 알바보다 못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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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자영업자 4중고 5중고 "못살겠다/ 카드수수료·부가세·임대료 떼면…사장이 알바보다 못벌기도

입력
2011.10.1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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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손이 닳도록 일하는데, 아르바이트생보다 수입이 적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19.8m²(6평) 규모의 샌드위치ㆍ커피 판매점을 운영하는 윤모(51ㆍ여)씨. 월평균 매출액이 900만원 안팎으로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각종 재료비 200만원과 교대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 두 명의 인건비 200만원, 전기ㆍ수도료와 시설 유지ㆍ보수비 등 운영비 200만원을 제하면 약 300만원이 남는다. 한데 여기서 부가가치세(90만원)와 카드가맹점 수수료(20만원)가 또 빠져나간다. 결국 손에 쥐는 건 190만원 정도.

그나마 윤씨는 자기 가게여서 임대료 부담이 없는 덕에 형편이 나은 편이다.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상인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주변에 커피점이 우후죽순 생겼었는데 요즘 거의 다 문을 닫았어요."

윤씨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1만원 이하 소액 카드결제 거부 허용 방침에 대해 매출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면서도 "찬성한다"고 했다. 샌드위치와 커피, 쿠키 등 1만원이 채 안 되는 제품을 주로 팔기 때문에 카드 수수료 부담만 없어도 숨통이 트일 거라는 기대감에서다. 더 큰 부담은 세금이다. 정부가 올해 7월부터 연 매출 4,800만원이 넘는 자영업자를 간이과세자에서 일반과세자로 전환함에 따라 10%의 부가가치세율을 적용 받는다. 연간 1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윤씨도 당연히 일반과세자에 해당해 매출의 10%(연 1,000만원)를 부가세로 내야 한다.

"연 매출 4,800만원이면 월 매출은 400만원이고 많이 남아도 200만원이 안될 텐데 여기서 40만원을 세금으로 거둬간다니 기가 찰 노릇이죠. 늘어난 부가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월 매출 400만원을 넘을 것 같으면 손님들에게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상인들이 많습니다. 불합리한 과세 기준이 탈세를 조장하는 셈이죠. 정부가 일반과세자 매출기준을 상향 조정할 생각은 않고, 소액 카드결제 거절 허용으로 생색내는 건 얄팍한 술수입니다."

동네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높은 임대료,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공세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과다한 세금과 카드 수수료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4중고, 5중고에 그야말로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삼겹살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안모(48ㆍ여)씨도 과중한 임대료와 카드 수수료, 세금 부담 등을 이기지 못해 한달 걸러 적자를 기록하다 보니, 소액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방안에 찬성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했다. "쥐꼬리만한 수입에서 부가세(10%)와 카드 수수료(2.3~2.6%)까지 빠져나가니 도저히 감당이 안됩니다."

안씨의 월평균 매출은 1,000만~1,500만원 선이지만, 실제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주5일제 도입 이후 금요일 저녁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사실상 주당 4일만 영업하는 꼴인 데다, 원가와 임대료, 운영비 등 지출은 해마다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영세 자영업자가 살 길은 부가세 적용기준을 완화하고 카드 수수료율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게 안씨 생각이다. 안씨는 "골프장이나 백화점 같은 대형 업소는 1%대 수수료를 받고, 생계형 자영업자에겐 3% 가까운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음식점의 경우 고객 숫자가 매일 불규칙하지만 손님이 오든 안 오든 재료는 사둬야 해서 재고로 쌓이는 게 많아요. 해가 갈수록 수입이 줄어 2년 전에 가게를 내놓았는데 보러 오는 사람이 없네요."

경북 안동시에서 소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권모(55)씨도 4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카드 수수료와 부가세 부담은 물론이고, 인구 17만명의 소도시에까지 진출한 대형마트들의 가격 공세와 들썩이는 임대료까지 전방위 압박에 숨을 쉴 수가 없다. 권씨는 "정부가 간판 교체, 진열 정비 등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면서 한때 매출이 오르기도 했지만, 롯데마트, 이마트, 농협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안동 곳곳에 진출하면서 순식간에 매출이 30%나 빠졌다"며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고객들을 잡기엔 역부족"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권씨 역시 월 1,500만원 안팎의 적잖은 매출을 올리지만, 대출 이자와 인건비, 관리비, 부가세, 카드 수수료 등을 빼고 나면 월 수입이 100만원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그도 소액 카드결제 거절 허용에 찬성한다. 수수료율이 3% 안팎으로 높아서기도 하지만 현금이 필요하기 때?甄? "요즘 현금을 주지 않으면 도매상들이 물건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며칠 전엔 500원짜리 과자를 사고 카드를 내미는 손님과 대판 싸웠어요."

가게 주인이 월세 80만원을 언제 올려달라고 할지도 조마조마하다. 권씨는 "건물주에게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해 간신히 묶어두고 있는데, 언제까지 봐줄지 걱정"이라며 "자고 나면 골목골목 편의점과 SSM이 새로 들어서는 상황이라 월 100만원 수입도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기자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해 절규했다. "여의도의 금융인들처럼 고소득을 보장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1년 365일 열심히 일하면 기본적인 의식주와 자녀 교육은 해결돼야 하지 않나요. 자영업자들은 일반 근로자와 달리 복지도, 퇴직금도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에 왔습니다. 영세 자영업자 보호 대책이 절실합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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