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울 상도4동 철거민들의 슬픈 투쟁기/ 15평 집에서… 주민 20여명 3년째 새우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울 상도4동 철거민들의 슬픈 투쟁기/ 15평 집에서… 주민 20여명 3년째 새우잠

입력
2011.10.11 17:33
0 0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 4동의 한 낡은 주택. 15평 남짓한 이 집에서 상도4동 주민 20여명이 3년째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밤이 되면 방 두 개와 거실의 부엌 싱크대 앞까지 모두 꽉 차 새우잠을 청한다. 재래식인 공동화장실은 하나밖에 없고 샤워 시설은 아예 없다. 하지만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기자가 이날 집을 찾았을 때 두꺼운 철제 이중문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천장에는 건설현장에서나 볼 법한 보조강철이 감옥의 쇠창살처럼 벽과 벽 사이에 20㎝간격으로 박혀 있고 거실에 단 한 대 있는 TV는 폐쇄회로(CC) TV로 집 주변을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의 일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새벽 상도 4동에 철거회사 직원 400여명이 몰려들어 무허가 건물 수 십여채에 대한 철거를 시작했다. 저항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문을 걸어 잠근 집에는 직원들이 지붕으로 올라가 천장을 부수고 사람들을 끌어냈다. 새벽 6시에 시작된 철거 작업이 오후 늦게 끝났을 때, 이 동네에 있던 33채가 한 줌의 흙덩이로 변했다. 40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박철순(50ㆍ여)씨는 1985년 중국집 주방장을 하던 남편과 이곳에 신혼방을 차렸다. 집 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어렵사리 구한 집이었다. 포크레인에 집이 헐린 이후 남편은 저녁마다 헐린 곳에 들어가 "여기가 내 집이야"라고 비명을 지르듯 외치곤 했다. 김영순(47ㆍ여)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우리 집 어디 갔어?"라고 묻는 말에 그저 "더 좋은 집 지어주려고 헐은 거란다"라며 울먹여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악몽 같은 기억이 남아있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이들을 위한 이주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 270만원을 내고 살던 이들에게 새 집을 찾아 떠날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주부다. 남편들은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갔고, 자식들은 함께 살 수 없어 친척집 등에 맡겨 놓은 지 오래다. 이곳에 남겨진 이들도 청소용역 직원이나 간병사 등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매주 동작구청 앞에서 임대 주택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지자체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하고 땅과 집주인들이 조합을 만들어 재개발하면 세입자도 임대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땅 주인이 단독으로 소유지에 새 건물을 지으면 세입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다. 동작구청이 2007년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했으나 대한토지신탁 등 땅주인이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현재 재개발 지정은 철회된 상태다. 심호섭 전국빈민연합 대표는 "먼저 임시 거주지부터 제공하고 개발을 하는 '순환식 재개발'이 안되니 갈 곳 없는 세입자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상도4동 산 65번지 주민들의 외침은 3년 전이나 오늘이나 같다. 고정득(57)씨는 말한다. "예전처럼 집 앞 등나무 아래서 식구가 빙 둘러 앉아 부침개 해먹는 날이 언제 올까요."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