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 웨이터 월급, 의사의 19% 불과… 독일은 32% 수준
검사장 출신으로 대형로펌에 스카우트된 한 변호사는 사석에서 우스개 소리로 "가끔씩 돈을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변호사는 한 달에 1억원 가까이 받는 것이 드물지 않다. 반면 한 대학에서 종일 허리가 굽도록 일하는 청소근로자는 "한 달에 100만원 받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극단적인 임금에 대해 "과연 당연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면 '학력차이'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논리가 논쟁을 차단하곤 했다. 그러나 복지강대국으로 통하는 유럽의 선진국들을 들여다 보니, 이런 차이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의사-웨이터 임금 차 5배, 독일은 3배
한국일보가 국제노동기구(ILO)와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토대로 독일과 한국의 10개 직종의 임금을 분석한 결과, 기업고위임원을 제외하면 임금이 최고 수준에 속하는 의사의 임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독일에서 의사 임금의 40% 이하를 받는 직종은 단 2개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는 7개에 이르렀다.
독일 의사의 월 평균 임금은 4,641유로(2008년 기준·현재 환율로 약 731만원)였고, 전문간호사는 의사 임금의 56%, 전자제품 조립원은 52%를 받았다.
한국은 의사의 월 평균 임금이 616만5,000원(2009년 전문의 기준)이었고 간호사는 이 임금의 35%, 전자제품 조립원은 24%를 받았다. 독일보다 각각 20~30%포인트 가량 더 차이가 나는 것이다.
건설노동자도 마찬가지여서 독일의 건설 철근공은 의사 임금의 47%를 받았지만, 한국은 29%를 받을 뿐이다. 10개 직종 중 가장 임금이 낮은 웨이터를 비교했을 때 독일은 의사 임금의 3분의 1(32%), 한국은 5분의 1(19%)이었다.
한국만 보았을 때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을 받는 대표적인 직종인 변호사와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각 월 평균 746만원(2009년 기준)과 84만원으로 9배의 차이가 났다.
스웨덴의 분야별 평균임금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스웨덴 통계청 자료를 보면 법률ㆍ경제ㆍ과학기술 분야 회사의 평균임금이 3만6,377크로나(2011년ㆍ631만원)인데, 임대ㆍ경비ㆍ잡역(청소노동자 포함)의 평균임금은 2만5,751크로나(446만원)로 29%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교사는 이보다 조금 높은 수준(2만6,544크로나)이다. 제조업의 평균임금(3만8,129크로나)이 금융ㆍ보험회사(4만489크로나)보다 6% 정도만 낮아 거의 차이가 없었다.
청소노동자 임금이 더 안 올라
우리나라의 임금 격차가 심화하고 있는 것은 저임금 직종일수록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231만원이었던 관리자의 월 평균 임금은 지난해 449만원으로, 사무종사자는 같은 기간 117만원에서 245만원으로 각각 2배로 올랐다.
반면 기능원 및 기능종사자 임금은 같은 기간 120만원에서 212만원으로 77% 인상에 그쳐, 10년 사이 사무원과 임금이 역전됐다. 장치ㆍ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도 117만원에서 199만원으로 70% 늘어나는데 그쳤다. 청소노동자가 속한 범주인 '청소 및 세탁 종사자, 가사 및 관련 보조원'의 월 평균 임금은 2000년 67만원에서 2008년 103만원으로 약 54% 늘어나는데 그쳤다. '건물 관리, 경비 관련 종사자'의 임금도 같은 기간 75만원에서 129만원 정도로 72%만 올랐다.
저임금 직종, 기술직을 포함한 제조업 종사자들의 임금상승 폭이 사무직이나 고위직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고용정보원 박상현 고용조사분석센터장은 "해마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직종간에 임금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학력별 임금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제조업 기반까지 악영향
일부 대기업은 예외지만 이처럼 제조업 기술직 노동자들을 홀대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성장잠재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동향분석실장은 "독일이나 우리나라 같은 제조업 국가는 숙련노동자들이 임금이나 고용안정성 등에서 제대로 대접받아야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장 근로자들이 홀대받으면서 (인력 유입이 안돼) 숙련노동자들의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노조조직률(근로자 중 조합원 비율)이 1989년 19.8%에서 2009년 10.1%까지 줄었고, 조직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규모도 커졌다"며 "제조업 국가는 독일처럼 노조가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야 숙련노동자들의 처우수준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월급 절반가량 세금으로 내는 독일 의사
"많이 버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 사회 전반의 복지수준을 높여야죠."
연봉 3만9,000파운드(약 7,100만원)의 약 3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영국 런던 특허전문로펌의 변리사시보 리차드 베이커(25)씨의 말이다. 정식 변리사가 되면 그의 연봉은 더 높아지는데, 4만3,000파운드(약7,800만원) 초과분부터는 세율 50%를 적용받는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신경정신과 전문의 한스 바우어(40)씨도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지금 내는 세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약의(특정 병원과 진료 계약을 맺은 의사)인 그는 한 달 소득 약 2만유로(약 3,200만원) 가운데 절반 정도를 세금과 보험료로 납부한다.
우리나라의 소득세율은 소득구간에 따라 최저 6%에서 최고 35%인 반면 영국은 20~50%, 독일은 14~45%로 우리보다 월등히 높다. 세금 높기로 유명한 스웨덴은 1990년대 소득세를 낮추었지만 그래도 최고 세율이 59%다.
이렇듯 많은 세금을 베이커씨나 바우어씨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는 유럽 선진국 부유층이 유별나게 높은 도덕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낸 세금만큼 고스란히 복지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커씨는 "매달 아동수당 80파운드(약 15만원), 어린이집 보육비 보조금 300파운드(약 55만원) 등의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도 부모가 합쳐 14개월까지 육아휴직이 가능하고 이 기간 동안 월급의 60%(최대 1,800유로ㆍ약 286만원)가 보장된다. 양육보조비, 부모수당(자녀 14개월까지), 아동수당(자녀 18세까지) 등 육아관련 보조금만 해도 적지 않다.
또 복지제도가 든든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재산을 모으기보다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노후대책으로 삼는다. 바우어씨는 "세입자의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어서 내 집이 없어도 내쫓길 일이 없으니 굳이 집을 살 생각이 없고, 노후에도 월급의 70%는 보장받기에 굳이 저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박명준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연구원은 "유럽 주요국은 복지제도가 잘 돼 있어 개인 자산을 불리려는 욕구가 덜하기도 하지만, 내가 내는 세금이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해 쓰이니 아깝지 않다는 의식이 있어 높은 세율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고 설명했다.
베를린ㆍ런던=김지은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