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은데요!" 백병동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1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Ⅲ'에서 아시아 초연된 프랑스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56)의 '롱아일랜드의 아침' 연주(서울시향) 후 원로 작곡가는 단 한마디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 곡은 올 6월 지휘자 정명훈씨에게 헌정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연주됐다.
작곡가가 20년 전 새벽 산보 때 받은 감흥을 재현한 이 곡으로 연주홀의 분위기도 일신했다. 비기자면 드뷔시의 '바다'를 언뜻 연상케 하는 전통적 관현악 작곡법에 충실했으나 2층 객석 앞 줄의 좌우 끝과 중간에 트럼펫 트롬본 호른을 배치, 곡의 진행에 맞춰 매우 독특한 입체 음향 효과를 냈다. 낯익은 공간이 두 세 배는 확장돼 왔다. 현대음악이 주는 별미다. 콘서트 전 1시간 40여분 동안 서울시향 예술감독실에서 뒤사팽이 한국 음악도 7명에게 펼쳤던 마스터클래스만큼이나 신선한 자극이었다.
"넘치는 힘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흘러가게 놔두라는 말씀이었어요. 특히 논리적 숙성에 대한 아쉬움의 지적은 감사히 새겨 들었죠." 자신이 쓴 바이올린 협주곡 'Kalon'을 들고 뒤사팽을 만난 신예 작곡가 신동훈(29)씨에게 대가가 던진 소감 한마디 한마디는 천군만마의 힘이었다. 소리 조작술 등 기교를 논리가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형식과 구조 등 작품의 내면에 대한 조언에 신씨는 가뭄 끝 단비를 만난 느낌이었다. "스페인 국립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그 곡의 CD를 부쳐 달라고 주소를 적어 주시더군요."
수강자들의 악보 펼쳐 든 뒤사팽은 "음악은 항상 춤추는 복합체"라며 생명력 있는 음악관을 강조했다. 악보를 한참 들여다 보더니, 피아노 앞에 앉아 즉석 연주를 했다. 때로 리듬과 선율을 변형해 가며 작곡자의 의도를 발전시켜 보기도 했다. 그는 mp3 파일로 갖고 온 음원은 플레이어를 통해 들어가며 강의를 이어갔다. mp3를 들으며 악보를 넘기는 동안 시향 예술감독실에선 핀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듯 했다.
이날 뒤사팽이 몸으로 보여 준 것은 즉흥과 변주를 통한 자유의 세계였다. 가장 음악적인 방식을 통한 강의는 젊은 음악도들의 마음에 꽂혔다. 마치 글렌 굴드가 허밍을 해 가며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듯 그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낮게 읊조려 가며 곡에 빠져 들었고,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설득력을 자아냈다. "(자신의 음악이)기계적이고 창조적인 변주(variation)의 시스템에 도달하면 부숴라. 안 들어도 다 알 수 있다면 멈춰야 한다는 증거다." 그가 수강자들에게 한 말은 한국 음악계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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