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우리는 불길하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몸은 앞쪽으로 기울어지고너와 나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마찰력과 만유인력이 팽팽하게 맞설 때까지
혹시 켜져 있을지도 모르는 가스 불과 근사한 연애, 마주 선 사람들의 벗은 몸 따위를 상상하며
심장의 BPM이 정점을 찍고 청색 신호총이 발사되어 약빠른 자가 가장 먼저 첫발을 뗄 때까지
제 몸을 찔러 줄 젓가락을 기다리는 설익은 감자처럼
제 몸을 채워 줄 펜을 기다리는 원고지의 빈칸처럼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우리는 불길하게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 학창시절에 배운 수많은 과학 지식들 중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어요. 관성의 법칙 정도?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하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영원히 움직이려 한다. '지금 나는 운동하고 있는 상태일까, 아님 정지한 상태일까?' 그 법칙을 배우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은 한 물체가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물리 세계의 법칙이라는데 시인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른가 봐요. 어떤 외적 자극이 주어지지 않아도 자꾸 다른 존재로 변하려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군요. 신호등은 아직 빨간 불인데 몸은 건널목 건너의 사람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설익었는데 몸을 찔러줄 존재를 부르기도 합니다. 신호총이 채 울리기도 전에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우사인 볼트의 발같이 활기차고 급한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요. 어떤 외부의 힘이 우리의 '발생하려는 경향'을, 그 멋지게 불길한 순간을 방해하는 걸까요?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