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35)씨는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택시(3,600원), 반찬(5,800원), 아이 간식(7,200원), 와이셔츠 세탁(3,000원) 등을 모두 카드로 긁은 뒤 월말에 지출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날아오는 카드명세서를 보관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카드 소액결제 덕분에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닐 일이 없다"고 했다.
대학생 A씨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들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뻔히 지갑에 돈이 있는데도 1,000~2,000원짜리 물품까지 카드로 결제해달라는 손님들 때문이다. A씨는 "평생 영세업자로 살아온 아버지가 수수료 떼이면 남는 게 없는데도 아무 말 못하는 걸 보고 있으면 차라리 장사를 접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용카드 소액결제를 대하는 태도는 처지에 따라 다르다. 쓰는 입장에선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니 금상첨화고, 받는 쪽에선 애꿎은 수수료를 홀로 부담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이 소액 카드결제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게 생겼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액결제의 (신용카드) 의무수납을 폐지 또는 완화하는 걸 본격 검토할 시기가 왔다"고 군불을 땠다.
아직 시행 시기와 결제거부 한도금액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 캐나다 등의 소액 기준이 10달러인 점을 감안해 1만원 이하 구매에 대해 카드결제를 거절할 수 있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7월 기준 1만원 이하 카드결제 건수는 전체의 3분의 1 가량이다.
소비자와 영세업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 금융당국의 입장은 조심스럽다. 영세업자의 수수료 부담 완화라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영세업자들도 속내는 시큰둥한데다, 당장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카드 고객들의 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객과 영세업자의 실제 반응은 어떨까.
중견기업 부장 이모(48)씨는 "카드결제가 보편화하면서 급할 때 쉽게 쓸 수 있고, 거스름돈도 생기지 않아 지갑에 현금을 많이 넣고 다니는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다"며 "(소액결제 거절은)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네티즌들 역시 "현금지급기 위치까지 파악하고 꼭 현금을 갖고 다녀야 하나", "언제는 신용카드 쓰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습관이 될만하니 끊느냐"라는 등 반대 일색이다. 그나마 찬성하는 축은 "불편하긴 하겠지만 씀씀이가 줄어드는" 장점을 꼽는 정도다.
영세업자들은 일단 수수료 부담이 줄어든다는 기대에 찬성하는 모양새다. 서울역 부근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는 김모씨는 "근처에 회사들이 많다 보니 대부분 1만원 이하로 카드 결제하는데, 가맹점수수료 2.6%와 인건비 부가세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며 "현금으로 받으면 그만큼 (수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비자와 영세업자 모두 소액결제 거절이 영세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근본적 해법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괜히 소비자와 상인들을 적으로 만들어 논란만 일으키느니 가맹점수수료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라는 것이다.
한 편의점 주인은 "당장이야 현금결제가 좋지만 소비자혜택 등을 고려하면 가맹점수수료를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회사원 손모(45)씨는 "소액결제 수수료를 아예 없애거나 상대적으로 더 낮추면 영세업자들의 거부감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티즌들 역시 "소액 카드결제가 급증하는데 수수료 내릴 생각은 않고 엉뚱한 짓만 한다", "1만원 이하 결제에 대해선 수수료를 없애라"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카드사들에게 소액결제 거절방안은 계륵이다. 그간 역(逆) 마진을 감수했던 소액결제가 사라지면 수익은 늘겠지만, 고객들의 원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2009년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다 호되게 당한 경험도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당장의 수익보다 부정적으로 흐르는 여론이 더 부담스러워 소탐대실"이라고 평했다.
겉으로 보면 영세업자와 소비자, 카드사 입장이 갈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불만이다. 고객 불편이 늘어나고 소비심리 위축에, 가맹점은 매출 감소 등의 불이익이 우려되는 탓이다.
서울YMCA 신용사회운동사무국은 "소비자 편의와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소비자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가맹점이 소액결제를 거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설령 거부한다 해도 고객이 다른 업소를 택할 수 있어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신용카드가맹점중앙회 관계자는 "카드회원과 가맹점 모두에게 외면당할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강아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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