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조차 없는 불우한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의 미래는 한없이 잿빛이다. 서로를 애써 밀어내던 남녀는 결국 마음을 나누고, 내일이 없는 인생을 살던 남자는 여자를 위해 새 출발을 한다. 하지만 여자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남자는 범죄조직과 연루되고 거액을 구한 뒤 거대한 불행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 추석연휴 개봉한 권상우 정려원 주연의 '통증'과 20일 선보일 소지섭 한효주 주연의 '오직 그대만'의 이야기 얼개다. 제 아무리 통속극이라 해도 너무 빼 닮았다. 정신적 충격 때문에 통증을 잃은 해결사 남자와 혈우병에 걸린 여자의 사랑('통증'),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허드렛일로 삶을 소진하는 남자와 시각장애인 여자의 농밀한 관계('오직 그대만')라는 점만 다를 뿐. 관객 눈물을 쏙 빼기 위한 인위적인 설정, 예측 가능한 전개 등은 TV 일일 드라마를 연상시킬 정도로 진부하고 전형적이다.
두 영화를 각각 지휘한 곽경택 감독과 송일곤 감독은 전통 멜로와는 거리를 두어온 이들이다. 곽 감독은 2007년'사랑'으로 이미 멜로에 도전했지만 '친구'와 '챔피언' 등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더 강점을 보여왔고, 단편영화 연출 시절부터 미학적 재기를 뽐내왔던 송 감독은 '꽃섬'과 '깃' 등 예술영화 성향의 좋은 작품들을 빚어왔다.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장기를 보여왔던 두 감독이 상투적인 이야기를 답습한다는 점에도 영화 팬들은 마뜩잖을 듯하다.
그러나 눈물이 뺨을 적실 정도는 아니어도 두 영화는 눈가에 물기를 불러낸다. 시간을 뛰어넘어 반복되고 변주되는 통속극의 저력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속 청춘 남녀들이 처한 환경은 사회 현실과 공명하며 가슴에 스산한 바람을 일으킨다. 이마가 깨지고 얼굴이 멍들어도 아픔을 모르는, '통증'의 남순(권상우)은 갖은 상처로 마음에 굳은 살이 단단히 박힌 우리 시대의 청춘을 상징한다. 주차장에서 일하며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오직 그대만'의 철민(소지섭)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초라한 젊음들을 대변한다.
'오직 그대만'의 정화(한효주)는 직장상사에게 능욕을 당할 뻔한 위기를 겪은 뒤 "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느냐"고 거칠게 묻는 철민에게 울먹이며 외친다.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두 영화 속 남녀의 순애보는 뻔하디 뻔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그렇게 가슴을 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