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그 가족의 범죄가 최근 잇따르면서 주한미군 및 미 군속, 그리고 그 가족의 범죄에 대해 일부 예외를 빼고는 경찰이 기소 전 구속수사를 못하도록 하고 있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9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자녀 A(19)군 등 5명이 지난달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술에 취한 강모(27)씨를 뒤따라가 집단 폭행한 뒤 휴대전화를 포함한 20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 상해)로 입건했다. 하지만 이들은 SOFA 규정에 따라 경찰 조사를 받은 후 곧바로 미군 헌병대에 인계됐다.
이달 7일에는 미8군 제1통신여단 소속 R(21) 이병이 서울 마포구의 한 고시텔에서 자고 있던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R이병의 신병 역시 현재 미군에게 넘어가 있다.
SOFA 협정(22조 5항)에 따라 미군과 미 군속, 그리고 그 가족이 살인, 강간을 저질러도 현행범에 대해서만 한국이 구금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신병은 검찰 기소 이후에야 미군으로부터 인도받을 수 있다. 그것도 살인, 강간 등 12개 중대 범죄가 아닐 경우 구속 수사를 할 수 없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범죄는 2008년 234건, 2009년 258건, 2010년 316건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1년 SOFA 2차 개정 이후 경기 동두천시에서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6일 기소된 미 2사단 K(21) 이병 등 3명만 구속 기소됐을 정도다. K이병 기소 때 미 국무부가 유감을 표시하고 잇따른 범죄에 주한미군이 심야 통행금지를 실시했지만 그때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 등 시민단체들은 8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경찰의 수사권을 제한하고 있는 SOFA를 즉각 개정하고 미군 성폭행범을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1966년 체결된 SOFA 협정이 1991년과 2001년 두 번 개정되면서 불평등성이 완화되기는 했으나 독소조항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유영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미군문제팀장은 9일 "불평등한 SOFA 규정이 미군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온당한 수사권 기소권 처벌권을 확보한다면 미군도 병사 교육을 강화할 것이고 장병 스스로도 자제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SOFA 2차 개정을 통해 미군 범죄자 신병 인도 시점이 '최종심 이후'에서 '기소 이후'로 앞당겨진 것은 성과였지만 그 조건이 12개 중대범죄로 제한되고, 구금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등 여전히 까다롭다"며 "변화된 한미 관계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격, 주한미군의 역할을 고려해 반드시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SOFA 이행 과정에서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언제든지 개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지만 당장 개정할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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