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탐욕을 규탄하다니 새삼스럽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역시 도발적일 뿐 그리 절실하게 와 닿지 않는다.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지만 내 눈에는 그저 한바탕 바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모든 투기시장의 밑바탕에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고, 월가의 사치와 방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월가의 사치와 방탕, 계속 늘어
톰 울프가 쓴 은 1980년대 초 월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셔먼 맥코이는 스스로 우주의 지배자라고 부르짖는 예일대 출신의 서른여덟 살 된 채권 트레이더다. 그는 연봉 100만 달러에 파크애비뉴의 260만 달러짜리 최고급 아파트에 살며 매달 대출 이자로만 2만1,000달러를 낸다. 아파트 관리비로 연 4만4,400달러, 별장 유지비 11만6,000달러, 고용인(4명) 급료 6만2,000달러, 가구와 의류비 6만5,000달러, 외식비 3만7,000달러를 지출한다. 그런데도 "이 정도는 남들에 비해 적은 편이고, 딸 생일파티 비용으로 4,000달러 밖에 쓰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소설이지만 과장만은 아니다. 톰 울프는 당시 월가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 뉴욕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15년간 몸담았던 곳이 바로 살로먼인데, 그가 81년 회사를 떠나면서 받은 금액이 1,000만 달러였다.
허영의 수치는 그 후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2007년 골드만삭스의 파트너 440명은 대부분 1,200만 달러가 넘는 보너스를 받았다. 최고경영자(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그해 받은 급여와 보너스는 6,850만 달러에 달했고, 2003~07년 수령한 총 금액은 2억1,017만 달러였다. 블랭크페인은 고액 연봉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우리는 신의 일(God's works)을 한다"고 답했던 인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에 1,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고 국유화한 보험회사 AIG의 계열사 사장 조셉 카사노는 퇴직수당으로 6,900만 달러를 챙겼다. 이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4,000만 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했고, 데미안 허스트의 800만 달러짜리 작품을 사들였다.
이런 사치와 허영을 가능케 해준 것은 투기시장이었다. 월가에서는 모든 것이 투기 대상이다. 그것도 글로벌 금융시장을 무대로 한다. 금리가 움직이고 신용등급이 오르내릴 때마다,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같은 경기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외환시장이 요동을 치고 금값과 원유가격이 춤을 춘다. 이익에 굶주린 월가의 투자은행과 헤지펀드가 앞장서고 보험회사와 상업은행, 사모펀드, 뮤추얼펀드가 가세한다.
월가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사치와 탐욕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언젠가 월가에서 '허영의 소각'이 벌어진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마치 500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허영의 소각' 이뤄져야
당시 고리대금업과 상공업으로 치부한 부자들의 교만과 방탕함은 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마침내 1497년 사육제의 마지막 날 시뇨리아 광장에는 높이 18미터, 둘레 72미터의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사치품 더미가 일곱 단으로 겹겹이 쌓였다. 피렌체의 수도사이자 개혁가였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화려한 의복과 귀금속, 이교도의 미술품과 서적은 재로 변했다. 그러나 교황은 사보나롤라를 이단자로 몰아 파문했고, 그를 처형하지 않으면 시민 전부를 파문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사보나롤라는 이듬해 교수형에 처해진 뒤 화형을 당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대사면을 간청하면 살려주겠다는 교황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가 태워버리려 했던 것은 단순히 사치품이 아니라 시민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물신숭배와 탐욕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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