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는 '3불'영화라고 한다. 봐야 하지만 보기 전부터 마음이 '불편'하다는 1불. 막상 보면 그 이야기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2불. 보고 나면 세상과 사회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는 3불이다. 이 3불을 자극하는 영화 속의 많은 내용 중에서도 압권은 관료의 초상(肖像)을 담은 장면들이다. 자애학교의 성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치를 떨며 교육청을 찾은 이들에게 여성 장학관이 던진 물음은 "폭행이 수업 중에 일어난 건가요?"라는 한마디다. 그리곤 방과 후라는 대답이 나오자 "방과 후면 저희 소관이 아니네요"라며 방긋 웃고 만다.
■ 납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관료의 초상은 그 뒤의 에피소드에서 더욱 일그러진다. 시청으로 달려간 주인공들에게 돌아온 공무원의 대답은 시청은 시설 관리만 할 뿐, 성범죄는 경찰의 소관이라는 것. 그런 식으로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판사 앞에까지 이르지만 관료주의의 벽 앞에서 맴돌 뿐 해결되지 못한다. 이 같은 초상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덧칠된 허상(虛像)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건 현실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관료들의 모습이 영화에 못지않기 때문일 것이다.
■ 관료주의라는 용어에 함축된 부정적 의미는 에 묘사된 책임 회피를 비롯해 무소신, 무사안일, 비능률, 무책임, 자원(예산) 낭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해당 사례는 오늘도 현실에서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당장 경전철 시행사에 용인시가 5,159억원을 지급하라는 국제중재법원의 그제 판결만 해도 무리한 사업을 무책임하게 벌인 지자체 관료들의 폐해를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최근의 정전대란이나 잊을 만하면 터지는 국방부 무기 관리의 허점과 비리, 카지노로 출근한 공무원들의 얘기 역시 공무 시스템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일으키는 일들이다.
■ 최근엔 단순히 관료주의라고만 볼 수 없는 묘한 일까지 벌어졌다. '부자감세' 철회 얘기다. 국민적 반발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자는 명백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 인하안을 철회하면서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 축소안도 함께 철회해 버렸다. 그 결과 연봉 1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실질 세부담은 부자감세안을 그냥 시행했을 때보다 오히려 최대 100만원 이상 줄게 됐다. "부자감세를 철회했으니, 맞물려진 공제축소안도 철회한 것"이라는 얘긴데, 이게 단순한 무소신ㆍ무책임인지 국민을 우롱하는 건지 정말 헷갈린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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