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심판의 날을 미루고 있다'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 대사의 외교 전문(2007년 4월 2일자)에서 드러난 미군기지 이전 비용 거짓말의 막전막후를 들여다보면 한편의 슬픈 코미디를 보는 듯 하다.
발단은 2007년 1월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외신기자클럽 회견이다. 용산기지 이전 시기가 미뤄질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화가 난 벨 사령관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시기, 유엔사령부의 역할 전환에 대한 소신과 기지 이전 진척에 미적대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방위비 분담금이 평택기지 이전 비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천기누설을 하고 만다. 외교부는 같은 달 18일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기지 이전에 분담금 사용은 국회와 국민에게 아직 설명하지 않은 내용"(2007년 1월 19일자)이라며 벨 사령관의 '폭탄 발언'에 항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미 국무부에 전할 것을 요구했다. 벨 사령관의 입을 단속해달라는 취지다. 사흘 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벨 사령관을 만나 기자회견에서 폭로한 불만섞인 내용을 협의하면서 다시 한번 발언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은 최근에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으며 많은 언론과 대중은 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다"며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만큼 언론들은 벨 사령관의 공개 발언을 왜곡할 것 같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공개 발언 전에 의문이 있으면 자신에게 꼭 전화하라고 말하자 벨 사령관은 "한국 국방부가 언론 발표 전에 나에게 미리 전화를 해줬으면 한다"고 가시 돋친 농담을 던졌다.(2007년 1월 22일자)
'분담금 전용 문제를 국회에 알릴 의사가 있다'고 했던 외교부 입장(2007년 1월 19일자)과 달리 국방부는 두 달 뒤 분담금 전용 문제를 쏙 뺀 채 "용산기지 이전은 한국이, 미 2사단 기지 이전은 미국이 비용을 부담할 것이다. 우리측 부담은 대략 전체 비용의 절반"이라고 발표했다. 버시바우 대사가 "93%가 한국 측 부담"이라며 '심판의 날'을 운운한 배경이다. 같은 달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 국회는 분담금 전용 문제를 개선하라는 부대 의견을 달아 7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결과를 비준했다. 이러한 국회 압력에 참여정부는 그 해 6월 분담금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미 측에 제안하게 된다.
분담금의 기지 이전비 전용을 없애는 대신 인건비와 군수비용 등을 대폭 부담해 전체적인 한국측 비용 부담 규모를 기존 수준과 맞추겠다는 안이다. 하지만 로버트 로프티스 미 측 방위비 협상대표는 보기 좋게 퇴짜를 놓았다. '한국 정부가 솔직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왜 우리에게 떠넘기느냐'는 것이다.(2007년 6월 25일자) 심지어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성 부차관은 방위비 분담금의 전용을 양해하는 내용을 담은 2002년의 미 2사단 이전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일부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국방부가 '공공연한 비밀'이 된 분담금 전용에 대한 한미 간 공감대가 있었음을 마지 못해 국회에 털어놓은 것은 정권교체가 된 다음해 10월이다. 분담금의 기지 이전 사용을 명확히 한 8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결과를 비준받기 위해서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의 한미 갈등을 담은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들은 하도 창피하고 굴욕적이어서 보지 않은 것만도 못했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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