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당초 예상을 깨고 5일 U턴을 했다. 전날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측근 의원들이 만류할 때만 해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손 대표는 당내 의원들의 사의 철회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대표 자리로 되돌아왔다.
손 대표가 U턴을 결심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민주당은 이날 손 대표의 사퇴 의사를 번복시키기 위해 온종일 동분서주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87명 중 65명이 이날 오전 8시에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손 대표의 사퇴 철회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의원들은 의총에서 "범야권 통합 후보 경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손 대표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라 선거 승리를 위해 앞장설 때"라고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그 뒤 김진표 원내대표와 정장선 사무총장, 박선숙 전략홍보본부장이 손 대표의 분당 자택을 방문해 설득에 나섰다.
손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내가 사퇴해야 혁신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세 시간에 걸친 주요 당직자들의 설득 끝에 손 대표는 사퇴를 번복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퇴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위한 당의 지원 필요성'을 주요 배경으로 거론했다. 10ㆍ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내지 못한 책임보다 제1 야당의 지도부 공백으로 인해 야권 승리에 기여하지 못할 경우 제기될 책임론을 더 염두에 뒀다는 뜻이다. 자칫 야권 단일 후보 경선 결과 불복으로 비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 차기 지도부 구성을 두고 계파 간 경쟁이 벌어진다면 당의 분열을 자초했다는 비판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손 대표는 "저의 사퇴를 수용하지 않는 당의 뜻이 손학규를 위한 것이 아니다"면서 " 남은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당과 민주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헌신을 명한 것인 만큼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번복 배경을 설명했다. 박선숙 본부장도 "사퇴 번복으로 인한 개인적인 상처보다 당장 서울시장 선거와 혁신, 통합이 필요한 당내 상황을 우선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서울시장 보선 지원과 차기 전당대회 준비, 야권통합 추진 등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내에선 "손 대표의 사의 표명 자체가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 재보선과 야권통합 등의 정치적 책무가 막중한 상황에서 지도부와 충분히 교감하지 않고 '대표직 사퇴'라는 승부수를 던져 개인 이미지만 관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당의 최고지도자가 중대한 거취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가 번복하는 것은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당직자는 "손 대표가 사의 철회 요구를 수용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야권 통합 경선 준비 과정에서 외부 인사 영입에만 공을 들이다 민주당 후보 중심의 선거 구도를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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