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받았다."
지난 2일 영화 '도가니'를 챙겨 본 조현오 경찰청장이 밝힌 소감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날 본 '도가니'를 언급하며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보완보다 전반적 사회의식 개혁이 더욱 절실하다"고 언급했다. 주요 정치인,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도 앞다퉈 영화를 관람한 뒤 저마다 한 마디씩 감상평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새삼스레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발언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경찰의 수장으로서 지금까지 사건의 실상을 모르고 있다가 "충격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06년 사건 발생 후 가해자가 엄히 처벌받지 않고, 장애인 인권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배경에는 사회복지시설의 부정과 비리를 눈 감은 법과 제도가 있다. 그런데 법과 제도 개선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사회의식 개혁이나 운운하고 있다. 게다가 고위 인사들의 소감에선 어디에도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인화학교 사건이 일어난 2006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2007년에는 국가청렴위원회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권고가 있었지만 법 개정이 무산된 것은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종교단체들의 반발과 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도가니 사건의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법과 제도의 탓이 크지만, 사건을 수사한 경찰 검찰과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를 휘두른 사법부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이러니 "차라리 소설가와 영화감독에게 재수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맡기자"는 말까지 나온다. 그 동안 인화학교 사건에 무심했던 언론도 잘한 게 없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뒤늦게 나서 마치 처음 발생한 일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볼썽사납다.
박우진 사회부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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