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바람이 문제다.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도,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의 시작도 모두 바람이 남겨준 결실이다. 그 옛날 미풍양속이란 명목에 발목이 잡혀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아줌마들의 치맛바람 역시 시대를 앞서간 바람의 문제였고,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따라하는 패션유행도 바람의 영향이다.
다만 그 바람이라는 것이 지난 여름의 태풍과 같이 인명과 재산피해까지 입히는 그런 바람이라면 별로 좋은 바람으로 기억될 수 없다. 그저 훈풍에 돛 단 듯 큰 풍파 없는 선선히 불어주는 바람이 가장 좋은 바람이다.
요즘 같이 다변화 되고 자유로운 세상일 수록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 득보다 실이 많은 바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시커먼 회오리바람보다 더 좋지 않은 바람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친구, 연인 등 모든 분야에 불어 닥쳐 사회를 혼란을 자초한다. 정치적 풍토도 그랬고, 언론도 그랬고, 보수·진보로 나뉜 이념의 현장도, 구세대와 신세대를 가르는 사회풍습도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에 이어 트위터, 스마트폰, 페이스북 등이 21세기의 대표적 통신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도 부정한 바람은 항상 상존한다.
근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만 보더라도 결국은 여론의 바람에 의존한다.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 역시 여론의 바람에 맞춰 춤을 추기는 마찬가지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이끌어 갈 시장후보를 선택하는데 개인적 인물 됨됨이나 능력, 자질 등엔 관심 없고 그저 바람으로 당락만 따질 뿐이다. 이런 잘못된 바람이 지금까지 지역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정치를 망친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한 사회'와 '공생발전' 역시 튼튼한 뿌리를 내리려면 그에 걸 맞는 사회 전반적 바람이 중요하다. 마이스터고, 자율고, 특성화고 등 고등학교 출신들의 취업확대를 위한 제도적 정착도 그렇고, 저소득층이나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사회분위기의 조성도 최종적으로는 바람이 좌우한다.
그러나 이 바람이라는 것이 불면 불수록 더 많은 혼란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 선거판이다. 한순간의 바람몰이로 승리만하면 그만인 우리 정치의 잘못된 관습이 결과론적으로 집단이기적 사회분위기와 사회혼란을 가속화시켰다. 정당정치의 명분도, 대의정치를 실천할 능력도 없다 보니 여론몰이라는 바람에 의존해 시한부 생명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꼴이다. 그저 정치권의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모든 선거에서 허리케인 같은 강력한 민심의 바람이 자기 쪽으로 불어주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 정치도, 우리 사회도 한순간의 바람몰이에 편승해 국가와 공동체사회의 미래를 기약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 한 사람을 뽑더라도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갖췄는지, 안보관은 투철한지, 범법적 사실은 없는지 등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에 맞는 면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우선 바람으로 띄워 놓고 뒤에 따라오는 티끌은 또 다른 역풍으로 잠재워 버린다는 논리는 초법적 발상 그 자체다. 이것 역시 하루빨리 바로 잡아야 할 잘못된 바람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샛바람, 갈바람, 마파람, 하늬바람, 높새바람과 같은 유익한 자연바람과 인간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바람이 항상 공존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21세기에는 '좋은 바람, 나쁜 바람, 이상한 바람' 정도는 구분하는 국민적 바람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다.
권혁철 선진화개혁추진회의 사무처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