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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욕, 하지 마라

입력
2011.10.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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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언어가 욕이고, 욕이 곧 언어다. 명사도, 부사도, 동사도 욕이다. 그것을 빼고 나면 조사만 달랑 남는다. 어느 집 아이 할 것 없이, 학교 집 가릴 것 없이 욕과 비속어가 넘친다. 버스 안에서 친구들끼리 큰소리로 욕만 해대는 중ㆍ고교생들을 만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휴대폰 통화도 연신 욕이다.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욕을 해댈까.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그 심각성을 EBS가 일깨워주었다. 욕과 비속어를 담을 수 없는 방송으로서는 쉽지 않은 시도로 EBS가 3, 4일 방송한 에서 평범한 중고생 4명이 8시간 동안 한 욕이 평균 400여 개였다. 그나마 집에서는 욕을 덜하는 편이어서 이 정도다. 방과 후, 저희들끼리 공원에 모인 여섯 명의 남녀 고등학생들은 불과 20분 만에 같은 숫자를 쏟아냈다. 방송제작팀이 그들에게 1분 동안 욕 않고 말하기를 제안했지만, 한 아이의 입에서 10초도 안돼 욕이 튀어 나왔다.

욕은 욕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즘 욕하지 않는 아이를 만나기가 힘들다. 청소년의 4분의 3이 매일 욕을 하고, 욕을 전혀 하지 않는 아이가 5%에 불과하고, 에서 보듯 초등학교 5학년아이 절반 이상이 10개 이상의 욕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범생과 문제학생, 남녀의 구분도 없어졌다. 혼자 인터넷게임을 하면서도 2분 동안 12번이나 욕을 한다. 어원이 무엇인지, 그 말이 얼마나 흉측하고 모욕적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내뱉는다.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어서 그 동안 개탄도 많았고, 원인 분석도 다양했고, 이런저런 해결책도 제시됐다. 언어의 습관성과 전염성, 일반 단어보다 4배나 되는 욕의 자극성과 기억력, 인터넷과 영화에서의 오염된 언어환경 등이'욕하는 아이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 맞는 얘기다. 실제 설문조사를 보면 아이들 절반 이상은 습관적으로 욕을 하고, 친구가 하면 나도 따라서 하게 된다. 욕은 한 번만 들어도 오래 기억되고,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로트레아몽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무서운 것은 그들의'욕'이 단순히 언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어는 사고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습관이라고 입에서만 머무르고 마는 것이 아니다. 욕에는 폭력성과 공격성이 늘 자리잡고 있다. 욕을 할 때 우리의 뇌는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와 비슷한 상태에 놓인다고 한다. 감정과 심리상태도 비슷하다. 그러니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욕은 결코 그냥 재미나 멋이 아니다. 물리적 폭력을 대신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인터넷이 그것을 마음껏 휘두르도록 방기했다.

언어로서의 욕 역시 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욕 뒤에 오는 말이 고울 리 없다. 품격이 있을 수 없다. 욕은 그 사람의 언어 전체를 상스럽고, 거칠고, 공격성을 띠게 만든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관용, 이해보다는 비난과 적대감으로 이어진다. 말을 그렇게 하면 생각과 마음도 그렇게 된다. 우리사회의 이념 대립과 계층갈등도 언제부터인가 사회지도층, 심지어 대통령까지 품위를 잃어버린 말을 함부로 하면서 그 골이 더 깊어졌는지 모른다.

언어를 바꾸는 독서, 글쓰기

언어는 습관이다. 습관을 고쳐야 한다. 그런데 습관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을 통제하는 것은 의식의 반복이다. 결국은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과 마음이 언어를 지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여든 평생 아버지가 욕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해서 고함을 쳐도 그 속에 욕을 섞지는 않는다. 그 놀랄 만한 절제력의 원천은 생각하는 독서와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서는 지식과 즐거움도 주지만, 언어를 풍부하게 만든다. 글쓰기는 언어를 아름답게 만든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도 글을 그렇게 막 쓰지 않는다. 글이 말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 글처럼 된다. 물론 인터넷 댓글이나 메신저, 트위터는 여기서 말하는 글이 아니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종이에 직접 쓰는 글을 말한다. 그 손의 기억들이 자신도 모르게 언어로 옮겨간다. 아버지부터 먼저 해야 한다. 욕설과 상소리투성이인 TV나 영화만 보고 있지 말고. 습관도 어른에게서 배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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