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의회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대 승인으로 한숨을 돌렸던 유럽 대륙에 또다시 아테네발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리스가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공식화하면서 이달 예정됐던 유로존 추가 구제금융 집행이 보류됐다. 이 돈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 국고는 중순 바닥을 드러내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가야 한다.
3일(현지시간)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룩셈부르크에서 회의를 열고 1차 구제금융(1,100억 유로) 중 6차분에 해당하는 80억유로 지원 결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유로그룹(재무장관 회의)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그리스 적자 감축이 시장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며 "13일 지원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로존이 회의적으로 돌변한 것은 전날 발표된 그리스의 내년 예산안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8.5%(187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구제금융 선결조건인 7.6%(171억 유로)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그리스의 자구노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유로존은 다시 선택의 기로에 내몰렸다. 디폴트만은 막아야 한다는 현실론에 밀려 돈을 계속 대거나,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직은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이 EFSF를 통해 수천억 유로를 추가 제공하겠다며 큰 판을 벌인 마당에, 16억유로에 불과한 적자 증가를 이유로 판을 통째로 뒤엎기엔 너무 부담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그룹이 적자 목표를 연도별로 집계하는 대신 올해와 내년 실적을 통합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봉책으로 그리스의 디폴트를 피해도 문제는 많다. 적자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서 보듯 그리스의 재정 부실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구제금융 비관론이 확산될 수 있다. 그리스의 상환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이 때문에 7월 합의된 민간 투자자들의 원금손실(헤어컷) 비율이 21%에서 40~50%로 늘 것이란 전망도 있다. 유로존은 구제금융을 계속하는 대가로 그리스에 더 강력한 구조조정(재정지출 축소)을 요구할 것이 확실하다. 이 경우 그리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디폴트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를 살린다고 유로존의 위기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3일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그리스 채권 209억유로를 쥔 프랑스계 벨기에 은행인 덱시아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는 등 서유럽 은행의 도미노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블룸버그 통신에 "문제는 그리스가 아니라 너무 커서 구할 수 없는 두 마리 코끼리(이탈리아 스페인)"라며 "위기 탈출을 위해 유로존은 최소 2조유로의 '바주카포'(EFSF)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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