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최근 취임 일성으로'보석(保釋)조건부 영장 제도'를 언급했다. "구속을 시키면서 보석조건을 함께 정하면 수사효율과 피의자 자유권을 동시에 살리는 양면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게 양 대법원장의 논리다. 구속영장 제도의 변화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와 지난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의견이 갈려 흐지부지된 보석조건부 영장제 도입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과 검찰은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 측은 제도에 반대하고 있고 법원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가진자에게 유리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제도'로 변질될 소지가 높다"고 잘라 말했다.반면 법원은 "불구속 수사 원칙과 피의자 인권 등을 감안할 때 당연히 필요한 제도"라며 검찰과 정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박재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석조건부 영장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는"브로커 등에 의한 수임비리가 줄어들지 않고 현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지금의 제도가 유전무죄 현상의 뿌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제도 도입을 반대했다. 그는 "(새 제도 도입 보다는)기존 영장제도를 개선해 영장발부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찬성
구속 후 보석 방식은 수임비리 조장…불구속 수사·재판 원칙 위해서도 필요
1994년과 95년 2년 동안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영장을 처리하면서 대략 1,000명에 대해 영장을 발부했다. 내내 개운치 않은 대목이 있었는데, 우선 실무상 영장발부기준이 어정쩡했고, 그 어정쩡함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형소법 상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범죄혐의의 상당성과 아울러 구속의 필요성, 즉 증거인멸·도주의 우려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실제 영장발부 여부는 죄질의 경중에 의해 판단됐다. 이러한 처리가 무죄추정의 원리나 형소법에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괴리를 없애려면 영장단계부터 보석이 허용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보석은 기소 이후에만 가능했다.
또, 간혹 피의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경우도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방법이 없었다는 점도 답답했다.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면서 피의자를 불러서 만나보는 게 왜 불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당시 어느 누구도 피의자를 부르지 않았다.
97년을 전후해 영장실질심사제도가 실시됐다. 영장단계에서 판사가 피의자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영장발부기준은 변하지 않았다. 중요사건에서 영장이 기각된 경우 법원과 검찰은 계속 충돌했다. 99년 초에는 대전법조비리사건이 터졌다. 수임비리가 대규모로 폭로된 것이다. IMF 사태로 안 그래도 어두운 나라 분위기는 그야말로 깜깜해졌다.
그 모든 사태가 이전의 고민과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어정쩡한 영장발부기준 하에서 고착된, '일단 구속 후 풀어주는' 운영방식이 법조계의 수임비리의 주요 원인의 하나임이 분명했다. 영장실질심사제도의 실시로 기각율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영장발부기준이 어정쩡한데다가, 전모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영장청구에 대한 결정이 발부 아니면 기각의 일도양단적인 것으로 남아 있어서, 법원과 검찰 사이에 불필요한 마찰이 빚어진다고 생각했다. 영장발부와 보석을 같이 할 수 있다면, 피의자들에게 구속을 벗어날 분명한 길을 제시하여 줌으로써 피의자들이 구속만 되면 막막한 상태에서 브로커들의 농간에 넘어가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또 보석으로 피의자가 풀려나는 경우에도 보석의 조건으로 출석의무, 주거여행제한, 관련자접촉제한 등을 부가한다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수사의 필요성을 조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99년께 미국에서 형사소송법 수업을 들었다. 미국의 경우,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부분은 집에 있는 피의자를 구속하는 경우로 축소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속 직후 지체 없이 피의자가 판사에게 인치되도록 해 법원이 범죄혐의의 상당성 및 구속의 필요성을 검토함과 동시에 보석 여부도 판단하고, 또 원칙적으로 보석을 허가함으로써, 무죄추정의 원칙과 수사의 필요성을 조화시키고 있었다. 즉 미국의 인신구속제도의 핵심은 판사와의 대면권 보장과 보석이었고, 둘은 동시에 행해지고 있었다. 머리 속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가진 자만이 제도의 혜택을 본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를 취하면 현재의 기소후 보석과 기소전 보석도 없애야 한다. 브로커 등에 의한 수임비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지금 오히려 현 제도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의 큰 뿌리라고 본다.
영장단계의 보석으로 수사가 현저히 방해받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피의자의 출석을 담보하고 증거인멸을 예방할만한 조치를 보석의 조건으로 붙이는 것이 가능한 이상, 위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위와 같은 조건을 붙여도 피의자가 풀려나면, 풀려나지 않은 경우보다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질은 우리 헌법 하에서 수사기관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성격의 것이다.
정책적인 차원의 논의를 떠나 보석을 조건으로 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영장청구에 대한 일부인용으로 보거나, 부관을 붙인 것으로 보면 별다른 입법조치 없이 바로 제도의 시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보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비례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까.
박재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반대
고액 보석금은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 영장발부 기준 명확히 하는 게 우선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제도는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해 지난해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양 대법원장의 발언으로 제도의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법원은 이 제도가 피의자의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구속 효과를 낼 수 있고, 피의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헌법의 정신에도 합치되는 제도라고 판단하고 있다.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는 보증금, 주거제한, 피해자 접근금지 등 조건을 부과해석방하는 제도로, 영장발부와 함께 보석금을 내면 석방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또는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제도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수사의 원칙에 따라 수사단계에서 보석금을 낸 피의자를 석방함으로써 피의자의 인권보호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에 부합되는 기능을 갖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석방을 위한 조건으로 보석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피의자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영장제도는 피의자의 인권과 직결된 중요한 인신보호제도이다. 현행 헌법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체포·구속 등에 있어서 사전에 영장을 받아야 하고, 영장의 발부는 법관만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법은 어떤 기준에 의해 영장을 발부해야 하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구속영장의 발부는 법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영장 발부 전 구속적부심사를 거치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위험성, 사회여론의 비난정도 등을 감안해 법관의 재량으로 발부한다.
이번에 제시된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는 이미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에서 시행중이다. 얼마 전 성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던 전 IMF 총재가 전자발찌 착용과 주거제한의 조건으로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것도 이 제도 덕택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엄청난 거액의 보석금을 내야만 석방된다는 점에서 피의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피의자가 이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의 도입이 피의자의 인권문제를 해결한다고 볼 수 없다. 이 제도에서 고액의 보석금은 경제적 능력을 가진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제도시행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판을 받게 되면 오히려 사법 불신만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피의자의 능력에 따라 보석금의 차등 책정을 통해 형평성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피의자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보석금의 적정한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적정한 보석금의 산정과 여러 전제 조건을 규정한다고 해도, 영장발부를 통한 구속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관이 하기 때문에 결국 석방 여부는 법관의 재량이고 법관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석조건부 영장제도의 도입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선 먼저 기존의 영장제도를 개선해 영장발부의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구속영장의 발부상황을 보면 일반적으로 피의자의 도주나 증거인멸 등의 염려가 있는 경우 또는 실형 선고를 받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경우, 죄질이 무겁거나 사회적 비난여론이 큰 경우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준은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다. 검찰은 영장발부의 기준에 대해 범죄의 중대성, 죄질, 재범의 우려, 사회적 위험성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구속사유 및 구속기준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해 수사기관과 일반국민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보석제도의 경우도 피의자에게 보석청구권을 부여함으로써 법관의 재량에 의한 직권보석보다는 권리보석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석조건부 영장제도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보다는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 기준에 의한 영장발부체계의 구축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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