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가슴에 묻었지만, 수의사가 되겠다던 딸의 꿈만은 차마 묻을 수가 없었습니다.”
4일 오후 2시 건국대 총장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딸의 학과 후배들에게 전해 달라며 장학금 1억원을 기부하는 유한욱(55)씨는 딸 혜선(25)씨가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끔찍한 사고는 지난 8월 발생했다. 수의학과 본과 졸업을 한 학기 앞둔 혜선씨는 공중 방역근무의로 군생활을 하던 동기들을 만나러 강원 고성군에 갔다 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량 전복으로 머리를 크게 다친 혜선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유씨 부부는 열심히 살았던 딸을 보내며 절망했다. 혜선씨는 대학 재학 중 4.5 만점에 평균 학점 4.38점을 기록하며 한 번도 과 수석을 놓치지 않은 자랑스런 딸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유명 제약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유씨 부부는 사고 며칠 뒤 딸의 미국 수의사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곤 가슴이 미어졌다.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해 현지 동물병원에서 일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혜선씨가 마음 조리며 기다리던 통지서였기 때문이다.
유씨 부부가 내놓은 1억원은 딸의 미국 유학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둔 학자금에 사고 보상금을 보탠 돈이다. 아버지 유씨는 “딸이 전액장학금을 받고 다닌 것을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 했고 졸업 후 취업하면 모교에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며 “후배들이 딸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장학금을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전달받은 장학금을 ‘유혜선 장학기금’으로 명명하고 수의학과 학생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건국대는 내년 2월 졸업식에서 혜선씨의 명예졸업장을 부모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정현기자 joh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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