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억만장자가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신경질환인 파킨슨병 치료에 도전장을 던졌다.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인 미국 인텔의 공동창업자 앤드루 그로브(75) 전 회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약으로 고통을 피하는 소극적 치료법을 거부하고 수백억원의 사재를 털어 신약을 개발하는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노력을 높이 사 'IT 업계의 경영 전략을 제약업계에 접목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로브 전 회장은 1995년 진단받은 전립선암을 이겨내 불치병과의 대결에서 이미 승리한 경험이 있다. 미국 일간 새너제이 머큐리뉴스는 "2000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그로브가 2005년부터 3,000만달러를 기부하며 치료제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그가 파킨슨병과 싸우는 방식은, 단순히 연구에 돈을 보태는 차원이 아니다. 신경세포가 하나씩 죽어가는 노구를 이끌고 신약 개발 연구환경 개선에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3일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열린 세계 줄기세포 서밋의 기조연설자로 나와 규제 철폐 등을 요구하면서 과학자들의 관료적 행태를 질타했다. 지난달에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임상실험 절차를 좀 더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썼다.
그가 2007년 신경과학회에서 한 연설은 아직도 의료계에 회자될 정도다. 그는 "인텔에서 일을 시작한 68년에는 컴퓨터 칩에 내장할 수 있는 트렌지스터의 수가 1,000개였고 지금은 26억개에 이르지만 파킨슨병의 치료법은 아직도 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의료계를 비판했다.
신문은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직후 뉴욕의 커뮤니티대학에서 화학엔지니어를위한미생물학 수업을 들은 것이 그로브 회장이 접한 생물학 강의의 전부지만 지금의 그는 현대의학의 최첨단 지식까지 쌓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로브가 숨 돌릴 틈 없이 바뀌는 IT 업계처럼 의료계에도 속도전을 요구하자 불만을 토로하는 의료계 인사도 적지 않다. 생물학자 케빈 데이비스는 "제약계가 반도체 산업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다"며 "우리는 인간의 복잡한 생리구조를 다뤄야 하며 까다로운 식품의약국(FDA)도 만족시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그로브는 "정력적으로 뭔가에 전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치료"라며 "그 과정에서 작은 성과가 나온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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