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파이팅!" "영등포 파이팅!"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옆 한강둔치 운동장. 주민들의 응원 소리가 파란 가을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용산 영등포 동대문 종로 남대문 등 서울의 5대 쪽방촌 밀집지역의 주민들. 한 방송사와 서울시가 이번에 처음 마련한 '쪽방촌 운동회'에 주민 700여명이 모였다. 지역별로 빨강 노랑 파랑 등 형형색색의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은 주민들은 1.5평짜리 답답한 쪽방에서 벗어나 모처럼 맘껏 웃었다.
"삑~." 풍선탑 쌓기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나자마자 각 지역의 대표 주민들이 재빠르게 달려나와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의욕에 찬 한 주민은 풍선을 너무 크게 불었는지 탑을 쌓자마자 풍선이 터지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용산 대표로 나온 김순애 할머니(84)는 "혼자 집에 있다가 밖에 나와 구경도 하고 게임도 하니 신나서 힘든 줄 모르겠다"며 풍선 하나를 거뜬히 불었다.
쌀부대(20㎏) 오래 들기 경기에서는 남대문 대표인 69세 신종식씨가 37세 영등포 대표 김재민씨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해 참가자들을 놀라게 했다. 경기를 보며 웃음을 멈추지 않던 오희섭(75)씨는 "살면서 이렇게 환하게 웃는 날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좁은 쪽방을 벗어나 강변에 나오니 시원해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시간도 잠시다.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가면 다시 외롭고 불편한 생활이 시작된다. 동대문에서 온 오기탁(50)씨는 "오늘 행사는 물론 즐거웠지만 이런 즐거움도 잠깐 아니냐"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생활하는 겨울이 두렵다. 이런 행사를 한다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건 아니다"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용산 쪽방상담소 이지영 실장은 "오늘 운동회에 참석한 사람은 쪽방 전체 주민의 10분의 1도 안 된다"며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지금도 좁은 방에서 외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에서 온 김모(60)씨는 "내가 사는 18만원짜리 방에는 공동화장실도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20m 떨어진 교회 화장실로 간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오후 3시쯤 한 여당 정치인이 방문해"평생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의 환호가 적었던 이유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지난 6월 기준 서울시 쪽방 거주자는 3,280명.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와 독거노인, 장애인들이다. 영등포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이곳에 사는 분들은 오갈 곳도 없어 외출도 하지 않고 사회성을 잃어버린 외로운 이웃들"이라며 "오늘의 일회성 행사가 이분들의 마음을 얼마나 쓰다듬어 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운동회의 마지막 경기는 박 터뜨리기. 주민들이 모래주머니를 던지자 '내일의 희망을 여는 영등포(각 지역이름)'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려왔다. 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에게'희망'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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