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숱한 논란 속에 지난달 28~30일 방송한 3부작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학계의 우려대로 사실을 누락하거나 교묘하게 왜곡해 이승만을 두둔하고 미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구나 기본적인 사실조차 틀린 부분이 많아 짜깁기 졸속 제작이란 지적까지 나왔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반대쪽 의견도 넣으며 치장을 했으나 잘못된 해석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조차 틀린 게 많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은 3부 '6ㆍ25와 4ㆍ19'에서 이승만이 3선 금지조항 폐지 등을 위해 단행한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삼선개헌'으로 표현했는데, 삼선개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9년 개헌을 가리키는 용어다. 또 이승만이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서 재선을 위한 '발췌개헌안'을 강행하기 직전의 정치 상황을 언급한 대목에서 이승만을 지지하던 정당을 한국국민당이라고 했는데, 이는 김구가 식민지 시절 만든 정당으로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쳤는지 의문이다"며 "잘못된 사실과 왜곡된 해석 등을 바로잡으려면 논문 한편 써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교묘한 짜깁기로 진실을 왜곡하는 방식은 프로그램 전반에 걸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제작진은 신탁통치 반대 운동 과정에서 김구가 '이승만을 중심으로 뭉치자'고 한 발언을 소개하며 김구가 이승만을 추종한 듯이 묘사했는데, 이는 통일정부 수립을 전제로 반탁을 주장한 김구와 단독정부 수립을 불사한 이승만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란 설명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김구와 이승만의 차이뿐 아니라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파나 중도좌파 정치인들의 입장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당시 정국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한 이승만의 길밖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왜곡해 이승만의 승리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은 또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이승만의 중대한 과오에 대해 '친일파가 이승만의 지지세력이었기 때문'이라는 학계 다수의 의견은 일각의 주장으로 다룬 반면,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아울러 친일파 청산보다 체제 전복을 노리는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막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4ㆍ3과 여순 사건을 전후로 벌어진 숱한 양민 학살사건이 간단히 언급될 뿐만 아니라, 이 사건들이 도리어 이승만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근거로 제시됐다. 이승만이 반공 정부를 수립했다는 단 하나의 논리로 독재와 양민학살, 친일파 등용 등 모든 과오를 덮으려 한 셈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너무나 편파적인 내용이어서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단체 등 101개 시민사회 단체가 꾸린 '친일독재찬양방송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방송이 나간 뒤 "공영방송 KBS가 뉴라이트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힘을 보태준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이승만이 독립운동단체들을 분열시키고 양민을 학살한 사실은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 미화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김일주 사무총장은 "어설픈 다큐멘터리라 안 나오는 게 나을 뻔했다"고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KBS 제작진이 이승만 박사 재평가에 관해 용기를 보여준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승만 다큐는 지난해 7월 김인규 KBS 사장의 지시로 제작이 시작됐으나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해 외주 PD를 충원해 만들었고 당초 5부작 계획이 3부로 축소됐다. 방송 이후 KBS 시청자 게시판은 이승만의 공과에 대한 치밀한 검증이 없었다는 비판 의견이 다수 게시됐다. KBS PD들조차 "공과를 함께 다룬다면서 미화에만 방점을 찍었다", "6억5,000만원의 제작비가 아까운 졸작""치밀한 검증 없이 기계적으로 사실을 나열한 수준 미달의 다큐"라며 혹평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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