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사이로 한여름 소나기가 세차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스크린에서 점점 멀어진다.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노년은 나이대로 늙는 게 아니라 열정을 잃어버리면 늙는 것이다."
이윤수(76) 할머니가 9월30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4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한 '황혼의 열정' 마지막 장면이다. '국가유공자 미망인', '작년' 등에 이어 그가 감독을 맡은 다섯 번째 영화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남편이 죽고 나니 너무 외롭고 좌절감마저 들었어요. 그 때 딸이 '엄마 컴퓨터 좀 배워봐'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5년 전 동사무소에서 처음 배운 컴퓨터가 이젠 남편이자 애인, 그리고 친구가 됐다. 컴퓨터를 알게되자 기계가 무섭지 않았다. 경기 안산에 있는 노인 컴퓨터 배움터, 은빛 둥지에서 캠코더 다루는 법을 익혔다.
시작은 손자 손녀들의 운동회와 졸업식, 입학식 영상이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자식들이 행사만 있으면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전문미디어 영화제작과정에 등록해 시나리오 작성, 촬영, 편집법을 배웠다. 이쯤되면 영화 제작에 뛰어들 정도가 됐다고 여길 법도 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출연자들은 자꾸 카메라를 의식했다. 한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수차례 컷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았다.
"몇 번 찍고 나니 영화가 뭔지 알겠어요. 말로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영화인 것 같아요." 이런 시행착오와 도전끝에 나오게 된 첫 작품이 2009년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 본선에 입선한 다큐멘터리 영화 '국가유공자 미망인'이었다. 남편이 국가유공자여서 평소 주시했던 주제였다.
올해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한 '천사의 향연'과 '황혼의 열정' 역시 모두 본선 진출작 27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요즘은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잘 찍을까를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늙었다고 실망하진 않아요.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때까진 인생에 최선을 다해야죠"
글·사진=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