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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프리카 방랑' 이집트서 남아공까지…지상여행론자의 걸어서 만난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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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프리카 방랑' 이집트서 남아공까지…지상여행론자의 걸어서 만난 아프리카

입력
2011.09.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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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방랑/폴 서루 지음·강주헌 옮김/작가정신 발행·784쪽·2만8,000원

해외여행은 비행기로 짧게는 몇 시간 길어야 하루 남짓 만에 이국 땅에 툭 떨어져 볼만한 곳 휙휙 둘러보며 열심히 사진 찍고, 다시 비행기에 몸 싣고 돌아오는 게 정답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의 인기 여행작가 폴 서루의 여행에 대한 정의는 좀 다르다.

'여행은 이동이다. 가장 바람직한 여행은 집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지상 여행이다. 나는 목표로 한 지점까지 단숨에 날아가 떨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여권과 배낭을 쥐고 국경을 건너고 철조망을 허둥지둥 빠져나오는 식으로 여행해야 '이곳'과 '저곳'의 관계를 진짜로 맛볼 수 있다. 그런 여행기만이 '저곳'의 진정한 얘기라 할 수 있다.'

그의 '지상여행론'이 유럽이나 북미 정도를 두고 말하는 거라면 고개 끄덕일 사람도 적지 않을 법하다. 하지만 그가 여행, 아니 모험을 감행한 곳은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방랑> (원제 )은 '발칙한~'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국의 빌 브라이슨, <산티아고 가는 길> 로 명성 있는 네덜란드 세스 노터봄과 함께 세계적인 여행 작가 반열에 올라 있는 서루의 느린 여행의 산물이다. 이미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그의 책 <유라시아 횡단기행> (궁리 발행)이 1970년대 중반에 나와 시대 변화가 반영되지 못한 데 비하면 2000년대 초반 여행을 담은 <아프리카 방랑> 은 지금의 아프리카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아프리카 동부의 나라들을 종단하기로 결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루는 1960년대 초반 평화봉사단원으로 말라위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우간다의 대학에서 강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푸른 대륙의 한복판에서 행복하게 살며 일'했다고 기억하는 그에게 그 이후 들려온 뉴스는 온통 분쟁과 학살, 에이즈와 가난 같은 어두운 소식뿐이었다. 그래서 직접 아프리카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집트를 떠나 다들 말리는 수단으로 에티오피아로,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 모잠비크, 말라위, 짐바브웨를 거쳐 남아공까지 기차와 닭장 버스, 가축운송용 트럭과 통나무배에 몸을 의지해 가며 그가 확인한 것은 그 모든 뉴스들이 진실이라는 점이다. 여행 중 그가 일상적으로 늘 마주하는 불편함은 돈을 바라고 몰려드는 아프리카인들과 불결하기 짝이 없는 거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장기독재하는 권력자, 부정부패한 정치인, 무능한 관리, 난립한 각종 구호단체와 선교단체의 위선 같은 절망적인 사회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었다.

저자는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후에도 낮은 생활수준, 높은 문맹률, 과밀한 인구가 해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질병은 더욱 많아졌다'고 한숨 쉰다. 그러나 '가장 악랄한 인간은, 가난한 교회의 헌금함을 훔치는 척박한 도둑처럼 외국 원조자들과 자기 국민을 등쳐먹는 놈들'이라며 '평범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 두툼한 여행기에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만 담긴 건 아니다. 나라마다의 문화와 풍물,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숱한 아프리카인들과 때로 배꼽을 잡게 하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집트에서 매매춘을 즐긴 플로베르, 에티오피아 하라르에서 장사꾼으로 성공한 시인 랭보나 아랍 문학의 거장 나기브 마푸즈나 나딘 고디머와의 만남 등은 문학비평가이기도 한 그의 특기가 살아 있는 대목이다.

책에는 낯이 화끈거리는 한국 관련 내용도 나온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의 목격담이다. 골동품점에서 한 아시아인 남자가 가게 주인이나 점원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고함을 질러대며 '물건'을 400비르(5만5,000원 정도)에 달라고 요구한다. 여자는 600비르를 고집한다. 몸을 부르르 떨고 횡설수설 해가며 화를 내던 이 남자는 결국 값을 깎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저자는 그 사람이 사려던 게 뭐냐고 물었다가 흠칫 놀란다. "상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얼마나 원하시는데요." "꽤 많이, 그런데 미국에 보내는 게 불법이라서." "문제 없어요. 친구 있으세요?" "어떤 친구?" "대사관 친구요. 방금 고함 치는 사람 봤죠? 한국 대사관 3등서기관이에요. 중국 일본 대사관 사람이 상아를 사요."

누군가 한국 외교관을 사칭했기를, 골동품점 직원이 뭘 잘못 알았기를 바라지만 어째 그게 아닐 것만 같다. 저자의 말처럼 아프리카가 '더 밝은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암흑성(Dark Star)'이라면, 이 땅이 그렇게 된 데는 외부인의 추악한 욕망도 단단히 한 몫하고 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과거 서양의 제국주의만이 아니라.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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