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경제와 사람/ '12인치 액션피겨의 명장' 한국인 4인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경제와 사람/ '12인치 액션피겨의 명장' 한국인 4인방

입력
2011.09.30 17:31
0 0

"이런 세상에, 이거 나잖아!"

올해 1월, 할리우드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은 손에 작은 인형을 들고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를 쳐다보는 얼굴이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액션피겨'로 불리는 화제의 인형은 홍콩의 핫토이에서 영화 '익스펜더블'의 주연을 맡았던 스탤론의 모습을 재현했다. 스탤론은 신기한 듯 액션피겨를 자세히 본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가 극찬한 액션피겨는 홍콩업체에서 나왔지만 사실 한국인 고준(35)씨가 만든 작품이다.

스탤론 뿐만이 아니다. 2006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토이박람회에 이소룡의 미망인 린다와 딸 샤론이 들렸다. 이소룡을 닮은 액션피겨를 보기 위해서다. 영화 '용쟁호투'속 한 장면을 재현한 채 서 있는 액션피겨를 본 린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똑같다"며 살아있는 남편을 보는 듯 했다. 이 작품은 당시 전세계에 '어니'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김형언(46)씨가 만들었다. 김 씨는 "당시 액션피겨를 선물 받은 린다 모녀가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초상권이 쉽게 해결됐다"고 회상했다.

린다 모녀만 놀란게 아니다. 세계 1위 휴대폰업체 노키아도 김 씨의 이소룡에 주목해 2008년 11월 소위 이소룡 프리미엄 휴대폰을 한정 생산해 중국에서만 판매했다. 김 씨의 액션피겨를 포함한 이소룡 폰의 가격은 무려 1,300달러, 당시 환율로 188만원이었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중국뿐 아니라 사용하지도 못하는 해외에서 김 씨의 이소룡 액션피겨 때문에 주문을 했다.

요즘 완구업계, 특히 액션피겨 업계에는 때아닌 '코리언 바람'이 불고 있다. 30㎝ 크기인 12인치 액션피겨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오래 전부터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널리 팔렸다. 관절을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고 실제 같은 의상 및 장신구 등을 갈아 입힐 수 있어 수십만 원대 고가에 팔린다.

그 동안 '지아이 조'로 유명한 하스브로, '건담'시리즈를 만든 반다이, 사이드쇼 등이 액션피겨 업체로 유명했으나, 2006년을 넘어서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갑자기 홍콩의 핫토이가 득세한 것이다. 핫토이가 내놓은 각종 영화 스타를 묘사한 액션피겨는 얼굴이 실제 스타들을 판박이처럼 빼 닮아 눈 코 입만 흉내 낸 기존 업체 제품과는 천지차이였다. 그 바람에 핫토이 제품은 10만원 정도 비싸게 팔아도 순식간에 매진이었다.

후발주자였던 핫토이 사장 하워드 챈은 2006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땀구멍까지 재현한 얼굴 모형을 보고 감탄을 했다. 챈 사장은 블로그 주인을 찾아 한국까지 날아왔다. 그렇게 해서 액션피겨 마니아들 사이에 명장으로 통하는 홍진철(39) 핫토이 이사와 최율리(31) 수석 조형사가 핫토이에 합류했고, 잇따라 김형언씨와 고준씨가 가세했다. 코리언 열풍이 불게 된 것이다. 조형사란 사람의 얼굴을 조소작업을 통해 똑같이 재현하는 일을 한다.

이 중 김 씨의 명성은 전설적이다. 홍대 금속공예과를 나와 잠시 가수 생활을 했던 그는 이소룡 '광팬'이다. 어느 날 취미로 이소룡의 12인치 액션피겨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됐고, 그 작품을 선물 받은 사람이 미국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올렸더니 입찰가가 수백 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때부터 김 씨는 '어니'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해 본격적으로 여러 편의 이소룡 액션피겨를 신들린 듯 쏟아냈다. 액션피겨 업계에서 그는 이소룡 전문가이자 명장으로 통한다.

스탤론을 놀라게 한 고준씨는 원래 한류스타 전문이다. 배용준, 이병헌, 송승헌, 최민식의 액션피겨를 만들었고 이 가운데 본인에게 허락을 받고 일본에서만 내놓은 배용준 액션피겨는 개당 30만원에 판매됐다. 핫토이에서 내놓은 브래드 피트, 크리스천 베일 등도 그가 만들었다.

홍일점 최율리씨는 '율리'라는 영어 애칭으로 마니아들 사이에 유명하다. 홍대 조소과를 나와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빚은 액션피겨 얼굴은 실물과 쌍둥이다. 그가 만든 아놀드 슈왈제네거, 조니 뎁, 저우룬파, 말론 브란도 등은 액션피겨의 명작으로 꼽힌다.

홍진철 이사는 페인팅 전문이다. 조형사들이 사진을 보며 고무찰흙 같은 스컬피를 이용해 얼굴을 만들면 그가 일일이 붓으로 피부 색칠을 한다. 그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액션피겨가 사람의 피부를 갖게 되는 셈이다.

한국인 4인방은 액션피겨 사상 최초로 전세계에 판매되는 제품 포장에'Arnie Kim'(김형언)'Ko Jun'(고준)'Yulli'(최율리)'JC hong'(홍진철) 등 영어 서명이 들어간다. 홍 이사는 "한국인들의 섬세한 손놀림이 세계 액션피겨 업계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며 "그 바람에 한국인들이 만든 액션피겨를 흉내내려는 움직임이 많다"고 말했다.

덕분에 디즈니, 20세기폭스, 파라마운트, DC코믹스, 마블 등 할리우드 대형영화사와 만화업체들이 잇따라 액션피겨 제작을 제안해 오고 있다. 최 씨는 "유명 영화 속 주인공들이 속속 나올 예정"이라며 "영화사 제안에 따라 영화 개봉보다 먼저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핫토이는 이처럼 빼어난 솜씨를 지닌 한국인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아예 내년에 한국 지사를 낼 계획이다. 홍 이사는 "숨어있는 조형 실력자를 발굴하는 오디션을 열어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라며 "밀랍인형의 축소판 같은 액션피겨를 통해 스타를 소장한다는 즐거움 때문에 세계 액션피겨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