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고양종합운동장 안에 있는 고양시 바둑 선수단 훈련 캠프에서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한 달 터울로 나란히 프로에 입문한 소속 선수 김현찬과 조인선의 입단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유건재 고양시 바둑 선수단 감독은 "두 선수의 입단은 국내 유일의 공식적인 바둑 선수단인 우리 팀의 큰 경사"라며 "앞으로 더욱 분발해서 역도의 장미란, 빙상의 이호석 조해리 못지 않은 활약으로 고양시를 빛내고 바둑계 발전에 크게 기여해 달라"고 격려했다.
국내 바둑계서 프로 기사 되기란 사법 고시 합격하는 것 못지 않게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이름도 생소한 고양시 바둑 선수단에서 무려 두 명이나 입단자를 배출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고양시 바둑선수단은 지난 해 4월에 발족했다. 일산 신도시에서 15년간 거주하며 바둑 동호회를 활발히 이끌어 온 프로 기사 유건재 8단이 오랫동안 시청 관계자들을 만나 생활 체육의 하나로 바둑을 지원해 달라고 끈질기게 설득, 지방 자치 단체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바둑 선수단이 마침내 설립됐다. 국내 최초, 아니 세계 최초다. 드디어 바둑이 육상, 역도, 태권도, 수영, 빙상, 테니스, 배드민턴, 세팍타크로, 마라톤에 이어 '스포츠의 메카' 고양시가 지원하는 열 번째 체육 종목이 된 것이다.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의 정가맹 단체가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바둑이 전국 체전에서 몇 년째 전시 종목에 머물러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한 현실에서 기초 자치 단체가 바둑을 정식 체육 종목으로 인정, 공식적인 지원을 시작한 첫 사례다.
고양시 바둑 선수단은 장양운 고양시바둑협회장이 단장, 유건재 8단이 감독을 맡고 있다. 이 밖에 시니어부 김동섭(52) 곽웅구(52) 안병운(50), 주니어부 정찬호(25) 김현찬(23) 조인선(21), 여자부 조경진(24) 김희수(23) 이선아(23) 등 선수 9명과 간사 1명(이광구 · 바둑 해설가)으로 구성돼 있다. 선수들 대부분이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여러 차례 전국 대회서 우승한 강자들이다. 여자부 선수 세 명은 올 여름 아마 바둑인들의 축제인 청풍명월 바둑가요제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양시는 감독과 선수들에게 매달 일정액의 연구비와 훈련 수당을 지급한다. 또 선수들은 고양시를 대표해 각종 대회에 출전,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고양시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 이 밖에 평소에는 고양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보급 활동을 펼친다. 생활 체육으로서 바둑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롤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기력이 아마 4단 정도인 최성 고양시장도 바둑 선수단 활동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크고 작은 바둑 대회가 열릴 때면 항상 대회장을 찾아 격려하는 것은 물론 출전 선수들과 직접 대국을 즐기기도 한다.
고양시 바둑선수단이 설립된 지 1년 남짓 밖에 안 되지만 그동안 거둔 성과는 엄청나다. 이선아 선수가 지난해 전국 체전 페어부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전국 규모 대회서 우승 다섯 번, 준우승 네 번을 해 고양시의 명예를 드높였다.
선수들은 매주 금요일 오전에 고양종합운동장 내 훈련장에 모여 연습 대국, 기보 검토 등 합동 훈련을 갖고 오후에는 일반 바둑팬들을 위한 무료 바둑 교실을 개설, 지도 다면기나 정석 및 사활 강의 등을 한다. 또 여름과 겨울 방학 중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바둑 교실을 운영하고 아파트 단지와 복지관, 노인 대학을 돌아 다니며 바둑을 가르치는 순회 바둑 교실 행사를 갖는 등 바둑을 통한 봉사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주민들도 평소 훈련장을 자주 찾아 선수들에게 지도를 받는다. 이 날도 훈련장 한쪽에서는 바둑팬 두 명이 열심히 수담을 나누고 있었다.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나대성씨(63)는 "엄청난 고수인 선수들이 무료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 가지 아쉬움은 고양시 바둑 선수단이 국내 유일이어서 너무 외롭다는 것. 유건재 감독은 "바둑 선수단이 두어 팀만 더 있어도 전국 자치 단체 바둑 대회나 시도 대항전 등 좀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대회를 기획해 바둑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전국적으로 보여준 관심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서울 은평구, 경기 안산 의정부, 충남 당진 보령, 경남 함양, 경북 문경 등 전국의 여러 자치 단체서 고양시 바둑 선수단의 운영 방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문의하거나 관계자를 파견한 적도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다른 지역에서도 바둑선수단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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